[12월 12일 화요일 장년 교과] 두로와 시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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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조차 이 여인을 믿음과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여인의 배경과 관계없이 고통당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간청을 들어주셨다.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 청중을 위해서, 마가복음은 이방인 청중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믿는다. 복음서를 공부할 때 이러한 구분을 염두에 두는 것은 도움이 된다.

마태복음 15:22~28과 마가복음 7:24~30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에서 여인이 묘사된 방식은 어떤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가?

마태가 이 어머니를 가나안 여인이라고만 기록한 것을 주목하라. 이와 달리 마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 여인을 “헬라인” 또는 “이방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에서 유일하게 “수로보니게”(Syrian Phoenicia, 페니키아의 수리아인) 족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여인에 대한 독특한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마태복음 15장에 기록된 이 이야기가 그 독자들의 배경과 세계관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마태의 독자들은 이 여인을 멸시받는 이방인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는 독자들에게 가나안 족속이 우상을 숭배하는 무리로서 그들의 악한 생활 방식과 관습이 오랫동안 유대 민족의 걸림돌이 되어 왔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조차도 이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가복음의 이방인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 마태복음의 청중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방인들은 이 여인을 그저 페니키아에서 태어난 수리아 혈통의 헬라인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이방인 중 한 사람을 고쳐 주신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이 여인은 자신의 민족적, 국가적 배경과 상관없이 딸의 생명을 염려하여 주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 보였을 것이다.

(이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여인의 요구에 즉시로 응답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으레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태도로 이 멸시받는 민족을 대표하는 자를 응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제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나타내었을 법한 냉정하고 무정한 태도를 생각하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후에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심으로 그 여인을 받아들이시고 동정하는 태도를 보이시고 이를 통해 고통당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이 일을 계획하셨다”(시대의 소망, 400).

<교훈> 제자들조차 이 여인을 믿음과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여인의 배경과 관계없이 고통당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간청을 들어주셨다.

<묵상> 요한일서 2:2을 읽어 보십시오. 이 본문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같다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적용> 당신의 생활 중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똑같다는 사실 앞에 어떤 부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국경과 계급이 없는 천국 복음 전파 사업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니게를 방문하시고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셨을 때 더욱 분명히 나타났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제자들은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도 진리의 빛을 갈망하는 영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국경, 계급 제도, 귀족층이 없으며 그들은 만방에 나아가 구주의 사랑의 기별을 전해야 한다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다”(사도행적, 19-20).

<기도> 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세상의 풍습을 따라 사람들을 대하는 연약한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시고 고쳐 주옵소서. 주님처럼 하늘의 사랑으로 모두를 대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