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금요일 장년 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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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로의 계단>, 57~65 ‘제자되는 증거’를 읽어보라.
엘렌 G. 화잇은 우리가 크신 교사께 진심으로 반응할 때 “그의 형상을 입고 그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의 뜻을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정로의 계단, 58)라고 말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우리의 의무도 기쁨이 된다(위의 책, 59 참고). 이제 마태복음 5~7장을 찾아보라. 이 부분은 산상보훈으로서 예수님의 학생들이 알아야 할 교훈들과 그분이 수립할 나라의 원리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갈망에 접속하시며 우리에게 자극을 주어서 우리가 어디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평범한 성경 공부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설득력 있는 성경 공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➋ 그대가 인생의 여정 중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순전히 개인적인 물음입니까?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토의하면 좋은 질문입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이라는 개념에 비춰볼 때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어떻게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➌ 바디매오는 육체적인 치유를 받고 시력을 회복하자마자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해 갔습니다. 가는 길에 그는 매일 크신 교사의 지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의 형상을 입고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분의 뜻을 행하기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주장하셨던 것처럼 왜 어떤 사람들은 높은 표준을 따르는 것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할까요?
➍ 어떻게 하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어떻게 정의합니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 지식대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TMI News

인생의 터닝포인트

얼마 전, SOS 10기 교육 캠프가 있었습니다. SOS 1기부터 10기를 전부 참석한 저였기에, 저에게 10기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활동 중간중간마다 과거의 저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모태신앙인들에게 신앙은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적극성과 절실함이 부족합니다. 그러던 제가 학생 선교 운동인 SOS에 참여했고 2기 때 비로소 영혼을 구원하는 경험을 통해서 과거의 나를 깨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배우고 싶고, 전하고 싶고, 늘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저로 변화된 것입니다.
물론 영혼 구원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전도회가 방학을 이용해서 이루어지다보니 매번 살을 도려낼 듯한 혹한과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폭염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겨울에는 길에서 30분을 서 있기도 힘들었고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길에서 쓰러지는 대원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일주일에 100km이상 학생들을 찾아 헤매야 했고, 1명의 영혼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100번의 거절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전도회를 개최하는 한 주간 사탄과 싸우며 기도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순간들도 경험해보고 울다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데리고 왔던 구도자가 연락이 안 되고, 침례 결심을 했다가도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탄의 공격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면서 어떻게 전도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SOS 운동이 더 확산되어서 교회의 내일이 희망으로 꽃피우기를 기도합니다.

SOS 박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