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갑자기 부활?│고린도교회는 분쟁과 무질서, 자기 자랑, 음행, 소송, 남녀 주도권 싸움,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 은사 자랑 등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바울은 이제까지 주 예수의 십자가와 성도 간의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을 이야기 하다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갑자기 미래에 있을 몸의 부활을 이야기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주님 오시는 날의 몸의 부활을 바라본다면 사실 지금까지 제시된 죽느냐 사느냐 다투었던 많은 문제들은 사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백여 형제가 일시에 볼 정도로,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정도로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이므로(고전 15:20)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부활도 확실합니다(50-54절). 그 때에 우리가 서로 죽느냐 사느냐 했던 그 만물은 다 주님께 복종합니다(28절).
바울이 매일 죽는 이유?(51절)│우리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이 구절을 매일 아침 우리의 자아를 주님에게 바치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런 이해도 은혜롭지만 본문은 그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냉혹합니다.
앞 구절인 30절에서 바울 자신은 실제적인 위험을 언제나 무릅쓴다고 말합니다. 뒤 구절인 32절은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운 이야기를 말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감수 한다고 말합니다.
문맥상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아침에 내 자신을 주님에게 바치며 자아가 죽는 경험을 넘어섭니다. 그는 매일 실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맹수와 싸우며 현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울이 죽음의 경험을 매일 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몸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오늘 생사를 넘나들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고린도교회가 죽느냐 사느냐 다투었던 문제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입니다. 그래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는 그들이 목숨을 건 사역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 즉 주님 오시는 날에 부활로 보상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58절).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게 하소서. 정말 몸의 부활을 믿으며 그것에 걸맞은 가치 있는 사역을 위해 날마다 죽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