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일요일 장년 교과] 불멸의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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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8절에 인용된 비유적 표현은 이 벌레들이 불멸의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벌레들에게 주어진 파괴하는 임무가 완전히 달성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9:42~48과 이사야 66:24를 비교해 보라. “벌레도 죽지 않고”(막 9:48, 흠정역)라는 구절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벌레”(막 9:48)라는 단수 명사를 죽은 후 육신에서 분리된 후 지옥으로 날아가 영원히 죽지 않고 무기한으로 고통을 받는 악인의 영혼이나 그런 영적 존재에 대한 암시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죽음을 무의식 상태라고 말하는 성경적 개념과 배치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본문에 대한 구약의 배경을 무시하는 것이다. “단수로 사용되고 있는 ‘벌레’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복수의 ‘벌레들’을 의미하며, 여기서도 한 마리의 벌레가 아니라 사체를 먹는 여러 마리의 벌레들을 나타낸다”(로버트 G.브래처와 유진 A. 니다, A Translator’s Handbook on the Gospel of Mark, 304).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48에서 이사야 66장 24절을 인용하셨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 무시무시한 구절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죽어 넘어지고 멸절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불로 소멸되지 않은 사체는 벌레들의 먹이가 되거나, 먼저 벌레들의 먹이가 된 후에 불로 소멸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육체의 파괴를 피해 지옥으로 날아가는 영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절대 죽지 않는 “벌레”는 무엇인가? 마가복음 9장 48절에 인용되고 있는 이사야 66장 24절의 비유적 표현은 이 벌레들이 불멸의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벌레들에게 주어진 파괴적인 임무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달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악한 자들의 사체를 먹이로 삼은 벌레들이 사체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중단 없이 먹어치운다는 뜻이다.

<묵상>
결국, 우리는 완전히 구원받거나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어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그분을 경배한다(사 66:22, 23). 이처럼 대조적인 운명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은 온전한 몸을 유지하더라도 결국 벌레와 불로 소멸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체의 일부가 없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막 9:42-48).

<교훈>
마가복음 9장 48절에 인용된 비유적 표현은 이 벌레들이 불멸의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벌레들에게 주어진 파괴하는 임무가 완전히 달성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적용>
자주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유혹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죄에서 돌아서기 위해 그대에게 필요한 단호한 결단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악인에겐 소멸하는 불이 되시는 하나님 – “그와 같이 최후의 큰 날 즉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 심판이 내리게 될 때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의로운 자에게 생명이 되는 그분의 얼굴의 영광이 악한 자에게는 소멸시키는 불이 될 것이다. 사랑을 거절하고 은혜를 멸시한 까닭에 죄인이 멸망을 당할 것이다”(시대의 소망, 600).

<기도>
결국에는 썩어져 없어질 이 땅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며 살기보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를 선택하며 살고 싶습니다. 오늘 제 앞에 놓인 선택들 앞에서 제가 가진 신앙의 가치를 분명히 나타내 보이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