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목요일 장년 교과] 제단 아래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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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인에 등장하는 제단 아래의 영혼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죽은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마침내 하나님에 의해 정의가 실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6:9~11을 읽어 보라. 죽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어떻게 “제단 아래”에서 큰소리로 외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 6장의 다섯째 인을 떼는 장면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게 된다.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원한 갚아 주시기를 외치고 있는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비유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계 6:9~11). 어떤 주석가들은 이 “제단”이 일곱째 인에서 언급된 향단이라고 주장한다(계 8:1~6). 그러나 요한계시록 6:9~11에 나타난 “피”에 관한 언급은 우리로 하여금 제물의 피가 부어졌던 번제단을 떠올리게 한다(레 4:18, 30, 34). 제물들의 피가 제단 주변에 뿌려진 것과 같이,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에 끝까지 충성함으로(계 6:9, 참조, 계 12:17, 14:12)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의 피가 하나님의 제단에 상징적으로 부어졌다.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 또한 상징적이다. “영혼들”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순교자들이 하늘에서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전히 원한 갚아 주시기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그들이 하늘에서 구원의 상급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한을 갚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또한, 요한이 실제 그대로의 하늘을 본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는 흰색, 붉은색, 검은색, 청황색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는 존재들이 없다. 예수는 거기서 칼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네 생물은 기록된 짐승의 특징들을 지닌, 실제적으로 날개 달린 생물들을 나타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늘에는 제단 밑에 있는 ‘영혼들’이 없다. 광경 모두는 위에서 기록한 영적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시각적으로 표현된 상징이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주석, 14권, 502쪽).

<묵상>
정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외쳐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공정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정의를 실현하실 것임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비재림교회 학자 조지 E. 래드(George E. Ladd)는 이렇게 기록했다. “여기에서(계 6:9~11) 제단은 희생의 피가 부어진 희생 제단이다. 요한이 제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는 구절은 죽은 자의 상태 또는 삶과 죽음 사이에 어떤 중간지대가 있다는 생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순교 당했다는 사실을 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한 것뿐이다”(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103).

<교훈>
다섯째 인에 등장하는 제단 아래의 영혼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죽은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마침내 하나님에 의해 정의가 실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적용>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경험한 것이 있습니까?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제단 아래 있는 무리는 순교자들을 뜻함 –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은 이상 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었다. 이 장면이 지나가고 난 후에 계시록 18장에 묘사된 장면이 나왔다. 그때 참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부름을 받고 나왔다”(화잇주석/요한계시록 6:9).

<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충성하며 사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자꾸 세상을 향해 곁눈질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모든 것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믿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