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처치 곤란과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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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삼상 6:2).

처치 곤란, 애물단지 여호와의 궤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여호와의 궤는 승리의 기념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블레셋의 각 성읍은 여호와 궤를 서로 자기 땅에 두지 않고자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궤가 머무는 블레셋 성읍마다 독한 종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삼상 5:11). 승리의 상징이었던 여호와의 궤는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독종 재앙을 당하며 오래 전, 애굽인과 바로의 완악함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서 애굽인들처럼 완악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삼상 6:6).

그들의 선택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주변 어느 민족보다도 이스라엘과 밀접히 지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민족이었습니다. 또, 그 순간은 그들이 자신들의 신 다곤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소 수레에 여호와의 궤를 실어 돌려보는 것만이 그들에게 최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연인가, 아닌가?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9절).

이미 이 큰 재앙이 내린 것이 여호와의 궤로 인한 것임을 블레셋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그 일이 우연이길 바랬습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소는 자신이 젖을 주는 송아지가 블레셋 땅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땅을 향해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방백들은 그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그날에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서 아무런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12, 16절). 그들은 여호와의 능하심을 보았지만, 그분의 사랑을 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친구가 될 기회를 놓치고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영원한 대적이 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기도) 주님을 애물단지로 보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역사를 우연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