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만만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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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저는 한 동안 사람들이 저를 만만하게 대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카리스마가 없다. 사람이 물렀다,’ 목회를 하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지로 강한 척 할 수도 없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만만한 사도,

바울 지금 바울은 자신이 수고한 교회에서 만만한 취급을 받습니다.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지금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만만하고 무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니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듭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항상 열렬하고 강인한 사도이자 선교사라는 바울의 이미지가 고린도후서에서 완전히 약자 취급당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만만한 취급을 받는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후반부에서 계속하여 약할 때에 강함이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3장에서도 바울은 그런 약한 면을 감수하여 성도들에게 강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해 그들이 강해지고 온전하게 된다면 그저 기뻐한다는 말합니다(9절).

만만한 예수님

예수님도 이 땅에서 약하고 만만한 사람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권능을 행하셨고 이적을 베푸셨지만 사람들의 괄시와 핍박에는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복수하지 않는 것을 알자 대담해지고 만만하게 생각해서 마음대로 잡아가고 재판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하나님 아버지는 능력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약함을 통해 강함이 임함으로 구속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을 바울과 우리도 함께 경험하며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4절).

더 나아가 그런 과정은 우리가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과정입니다. 약함을 통해 강함을 누리지 못하면 오히려 버림을 받은 존재라고 바울은 말합니다(5-6절).

고린도교인들이 만만히 여겼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구속을 이루신 주님을 빌어서 자신을 만만히 대하는 그들을 위해 평안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삼위일체가 등장하는 축원을 합니다(11-13절). 만만한 존재인 저도 거기에 함께 참여하길 사모합니다.

전능자이심에도 만만히 여기심을 받은 주님은 그것을 통해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저희도 삶에서 그런 과정을 경험할 때 그것이 구원이 되고 구속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