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허무에 지친 영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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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시 39:5).

인생이 허무한 이유

인생의 허무감이 밀려옵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이고 “나는 왜 사는 거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떠오릅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스티거 박사는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재난이 일어나고 자신이 병에 걸리는지 그리고 그런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생일, 결혼기념일 등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통해 현재 자기 삶이 가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삶이 힘들 때, 특히 큰 실패를 맛보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혔을 때, 내 삶을 의미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중요한 사람이나 일들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우리는 “의미의 공백”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허무감입니다.

신앙인의 인생도 허무할 수 있나?

다윗은 ‘의미의 공백’을 겪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섬겨 왔는데도 인생이 한 뼘 길이 정도로 느껴지고 자신의 마지막과 연한을 생각할수록 연약함을 절감합니다. 인생은 그림자 같아서 수고한 일들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4-6절).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수고해 온 다윗은 인생이란 참으로 헛될 뿐이라고 말합니다(11절).

자기가 섬겼던 왕과 자기가 구원했던 나라에게 배신을 당하고, 인생 후반기에는 자기가 낳은 자녀들에게 배반당하는 등 부침 많은 생애를 살았던 다윗이 겪었을 “의미의 공백” 곧 “허무감”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허무한 과정조차도 주께서 허락하셨기에 일어났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주님의 섭리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9절).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성취나 자기가 의지했던 사람이 아닌, 주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절). 결국 허무를 극복하는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허무가 몰려오고, 참된 소망이 있으면 허무는 사라집니다.

기도) 오늘 밀려오는 의미의 공백을 채우실 유일하신 주님께 저의 소망을 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