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안식을 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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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동료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강조하며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분은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셨습니다. 하늘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그분은 하늘의 모든 것에 친숙한 분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에 대해 말하듯이 그분은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감과 일체감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신령한 빛으로 세상을 깨우치러 온 분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한 번도 랍비들의 학교에 드나든 적이 없습니다. 인류를 가르치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위대함 그 이상의 것을 염두에 두고서, 그 결과가 영원까지 이르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었을까요? 어부 베드로의 집에서 또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에 대해 말씀하시는 그분을 보십시오. 보통 그리스도께서는 옥외에서 가르치셨지만 유대인들의 예배에 참석했기에 성전 안에서 가르치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부분 산기슭이나 어부의 배 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듯 미천한 어부들의 삶 속에 들어가셨고, 가난하고 고통과 멸시를 받는 자들을 동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분께로 이끌렸습니다.
구원의 계획을 세울 때 그리스도께서는 신의 특성을 갖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결정되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곤란과 역경 가운데 있는 인류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로 오셔야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하늘 궁전에서처럼 높은 지위에 어울리는 모습을 띨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겪는 고난과 가난의 가장 낮은 자리에 이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무거운 짐을 지고 절망한 자들에게 그분의 음성이 들릴 수 있고, 지치고 죄로 병든 영혼들에게 수보하는 자, 열방의 희망,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땅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처럼 오늘날 안식과 평화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도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Manuscript(원고), 1897년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