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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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바울은 자신의 억울한 상황에 대해 전혀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지금 자신이 상황은 어차피 철거해야할 장막에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고후 4:18-5:1).

바울의 소망: 하늘 집을 덧입기를 사모함

1. 그는 지금 부활의 소망을 강조합니다.

지금 현재의 몸은 장막입니다. 바울은 영원한 부활한 몸을 사모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늘의 거처를 덧입기를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고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문맥은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2. 그는 지금 부활의 소망 그 이상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장막 같은 현재 몸에 영원한 존재가 지금 이 시간 임하기를 사모합니다. 이 몸은 무너질 것이고 죽을 것이지만 주의 영광이 임하는 곳입니다(고후 3:18). 질그릇 같은 몸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는 보배가 있는 곳입니다(고후 4:6, 7).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으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날 몸입니다(고후 4:10).

장막 같은 몸에도 영원한 영광이 임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모세의 장막에도, 솔로몬 성전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똑같이 우리 몸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생명이 죽음을 삼킵니다.

세상은 죽음이 생명을 삼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생명이 사망을 삼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그리스도를 항상 입을 때 이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드디어 우리의 장막이 영원한 거처를 덧입었습니다.

3. 그럴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합니다(14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지금 우리는 새 것이 됩니다(17절).

4. 새로운 존재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억울한 일은 소소한 일입니다. 그는 더 큰 새로운 일 즉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역을 합니다. 죽음을 삼킨 생명을 가진 몸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하며(11절) 세상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합니다(18-21절).

오늘 이 시간 하늘의 처소를 덧입게 하시고 하늘의 화목을 지금 여기서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