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5).
지금 바울은 분쟁하는 교회, 고린도교회에서 분쟁이 사라질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령, 주,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4-11)│은사가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습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는 같습니다. 사역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습니다(고전 12:4-6).
교회를 세우는 삼위일체인 은사, 직분,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은사, 직분, 사역이 조화를 이루면면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는 지금 직분만 있고 은사와 사역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자기주장의 분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은사와 사역이 없는 직분은 현대 교회의 큰 고질병입니다.
한 몸과 여러 지체(고전 12:12-26)│우리는 인종, 국적, 신분에 상관없이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몸을 고르게 했다는 말은 지체들이 서로를 돌보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기에 서로를 기다리며 돌보면 분쟁은 사라집니다. 앞서 같음을 강조했다면 여기서는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더욱 큰 은사, 가장 좋은 길(고전 12:31)│여기서 더욱 큰 은사는 복수입니다. 그것들은 28절에서 맨 앞에 언급된 사도, 선지자, 교사의 은사입니다. 공통점은 말씀을 맡은 은사들입니다. 더욱 큰 은사들은 말씀을 맡은 은사들입니다. 말씀을 맡은 이들이 교만하면 로마서가 말하는 유대인들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랑의 길을 가면 아름다운 일이 일어납니다.
가장 좋은 길은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가장 좋은 길은 이 은사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사람이 됩니다. 부분적으로 아는 것들이 주께서 나를 알듯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됩니다(고전 13:9-12). 이럴 때 분쟁은 사라집니다. 말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그렇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십자가에 돌아가셨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서 시기와 분쟁을 사라지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각 사람이 섬기는 교회에서 분쟁을 사라지게 합니다. 주여 성령으로 사랑을 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