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목요일 장년 교과] 아모리 족속의 죄

376

이방 나라들을 진멸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온전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주어진 빛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신명기 2장과 3장에서 모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적들을 물리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거인”처럼 큰 적들에게서도 말이다(신 2:11, 20, 신 3:13).
여기서 우리는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어려운 주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적들의 멸망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적들에게 먼저 평화를 제안했지만(신 20:10, 11), 만약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그들을 치고 진멸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그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신 2:33, 34).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둘러대며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딤후 3:16) 믿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는 우리 재림 성도들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5:1~16을 읽어 보라. 창세기 15:16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으며 그것이 이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어떤 빛을 제공하는가?

많은 이방 나라들이 극도로 잔혹하고 사악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공정한 진노와 형벌을 마주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하나님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를 기다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진멸하셨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묵상>
고린도전서 10:1~4와 요한복음 14: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을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내용의 성경절들은 우리가 이 말씀들과 상충 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선하심을 신뢰하도록 도와주는가?

(이어서) 그러므로 지금은, 그 사건의 배경에 대해 주어진 제한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미 다른 방법으로 분명하게 나타나 보여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믿음은 그저 화창한 날에 싱그러운 숲속에서 보기 좋은 것들과 듣기 좋은 소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교훈>
이방 나라들을 진멸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온전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주어진 빛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적용>
세상에 난무하는 고통 가운데 침묵하시는 듯 보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영감의 교훈>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리시는 이유 – “여호와께서는 복수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는, 지상의 거민들을 완전한 타락과 파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려야만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628).

<기도>
악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앞서 분명히 보여 주신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답을 주실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