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진정한 절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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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5-27).

언제나 부러웠던 사도 바울의 모습

부끄러움이 많고 말수가 적은 저는 언제나 사도바울의 적극적인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 모두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을 얻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진정한 본문의 의미를 깨닫고

그러나 저는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바울에 대한 열등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도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영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오히려 바울은 사도가 아니기에 사도들이 당연히 누릴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고전 9:4-14).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런 권한이 분명히 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랑할 것이 없고 당연히 할 사명을 하기 때문이며 값진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자체를 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5-18절).

그러면서 자신은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었다고 말합니다. 제가 느꼈던 바울의 엄청난 목회 능력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섬겼던 모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섬김은 상대의 구원을 위해 상대에 맞춥니다. 그리고 섬김에는 열등감이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달리는 자들은 이기기 위해 절제합니다. 이기기 원하는 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주장하기 않습니다. 똑같이 바울도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주장하기 않고 자기 몸을 쳐 복종합니다. 이는 자기의 권한을 주장하다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처럼 교만하여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절제는 자신의 권한을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절제는 섬김입니다. 거기에는 열등감이 없습니다. 섬김의 자유를 배우면서 저는 사도 바울을 향한 열등감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절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 진정한 절제와 섬김의 자유를 배우는 하루를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