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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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 9:3).

원수 혹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바울은 유대인들의 원수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아는 바울에게 그들은 자기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었습니다. 로마서 9장의 바울은 로마서 1-8장의 경험을 거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롬 8:29) 그는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롬 8:37). 이런 사람은 원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를 원수로 대하며 결사대를 조직하여 암살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나의 형제, 골육의 친척이라고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사모합니다.

살기등등하여 죽이고자 가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형제라는 소리를 들었던 바울은 이제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요셉도, 모세도, 많은 선지자들도 동일한 경험을 합니다. 주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는 경험입니다.

형제들에 대한 소망

바울은 혼자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변화시킨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역설하고 있습니다(롬 9:22, 23).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목사는 혼자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부모는 혼자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역주민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혼자 구원받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혼자 하늘에서 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골육친척 형제로 부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진짜 저주를 받아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정말로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은 혼자 하늘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먼저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받기를 원하기에 저주를 받아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끊어지셨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 사랑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