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목요일 장년 교과] 조상들과 함께 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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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우리보다 앞서 잠든 조상들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창세기 25:8, 사무엘하 7:12, 열왕기상 2:10, 그리고 열왕기상 22:40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이 그대가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에 무엇을 더해 주는가?

구약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과 장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은 아브라함에 관하여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 25:8)라고 기록한다. 아론과 모세 또한 그들의 조상에게로 돌아갔다(신 32:50).

선한 왕과 악한 왕 모두 죽은 후에 같은 곳으로 갔다는 사실이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왕하 24:6, 대하 32:33)

죽음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어떤 이가 조상들과 함께 누웠다(rested)고 표현하는 것이다. 성경은 다윗 왕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왕상 2:10). 같은 표현이 이스라엘의 몇몇 선한 왕 그리고 악한 왕의 죽음을 기록하는 구절에도 사용되었다.
조상들과 함께 누웠다는 표현을 통해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우리의 힘든 일들과 고통으로부터 쉬게 될 때가 온다는 사실이다. 둘째, 조상들이 이미 앞서 갔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되는 첫 번째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셋째, 그들 가까이에 매장됨으로 우리는 죽음의 무의식 상태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현대의 개인주의적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묵상>
죽은 자들이 여전히 의식을 가지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다는 진리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자들 가까이에 묻힐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소통도 없다.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될 영광의 날이 이를 때까지 의식 없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교훈>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우리보다 앞서 잠든 조상들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적용>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최고의 소망은 부활의 약속입니다. 죽음 앞에서 소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부활의 진리는 위로와 기쁨을 줌 – “바울의 편지를 열어 읽었을 때, 죽은 자의 진정한 상태를 나타낸 말은 교회에게 큰 기쁨과 위안을 가져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살아 있는 자들이 예수 안에서 잠자는 자들보다 먼저 주를 만나러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이 자는 자들에게 울리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부활할 것이다.”(사도행적, 258)

<기도>
죄로 인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슬픈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분명한 소망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