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깊은 우울감
요즘 이유 모를 깊은 우울감이 덮쳐 옵니다. 시편 22편을 읽어가니 이 우울감이 더욱 커집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니까?…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아까?”를 보니, 제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것인지 우울감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한 번씩 닥쳐오는 우울감에 어느 때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목회자로서 올바른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도 극심한 우울증으로 괴로워했고,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인 모세, 엘리야, 사도 바울 등도 우울감에 사로잡혔었다는 기독교 상담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다윗이 시편 22편을 적을 때, 제 생각에는 분명 그도 극도의 우울증, 더 심하게 말하면 조울증 증세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시편 22편 1-2절에는 극도로 우울한 감정이 묻어납니다. 그런데 3-5절에서 다윗은 주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6-7절에서 그는 자신을 벌레라며 다시 자기를 비하하고 주변 모든 사람이 자기를 비웃는다고 생각하는 강박을 보여줍니다. 9-10절에서는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 맡겨진 존재라는 극도의 신뢰를 하나님께 드러냅니다. 이렇게 짧게 업다운을 반복하던 다윗은 11절부터 21절까지 아무도 자신을 돕는 사람이 없다며 괴로워합니다. 죽을 것 같다며 하나님께 속히 도와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런데 또 22절부터 이 시를 마칠 때까지 다윗은 주님을 찬송하고 온 백성들에게 그 찬송에 함께 하라고 기쁘게 외칩니다.
이유가 없다
다윗이 이런 심각한 기복을 보이는데도 성경 본문은 이유를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반응도 나오지 않습니다. 잘못했다는 질책도 없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권면도 없습니다. 그저 천년이 지난 뒤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며 시편 22편 1절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편 22편을 시편에 넣어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울증 증세를 보였지만 믿음을 져버리지 않은 다윗을 오늘 만나게 하시고, 십자가의 주님을 대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기도) 우울한 저를 사랑하시는 십자가의 주님을 마음에 모시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