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율법과 계명을 알면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습니다.
우리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롬 7:1).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내가 좀 잘못 해도 용서해주신다고 위안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도 예수님 믿기 전의 모습과 별로 변화가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우리는 합니다. 이는 법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법이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에게 “너나 잘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도 무의식속에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을 알면 은혜라는 핑계 속에 묻어버린 죄가 다시 부활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가 부활하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9절).
어차피 죽을 인생?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도 우리는 어차피 죽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살아도 은혜를 핑계 삼아 죄를 합리화하면 법은 없어지지 않기에 법을 아는 나에게 죄는 다시 살아나고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실 우리는 평소에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이 들거나 자식이 내 맘대로 안 되거나 등 영원과 마주치면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죄 많은 존재인지를 깨닫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과 이 껍데기 육체가 다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과 마주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을 인생입니다.
이왕 죽는 거?
이왕 죽는 거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죽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롬 6:3). 율법은 죽지 않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어도 율법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해답은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롬 7:1-4). 어차피 죽을 인생! 나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죄의 법은 더 이상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침례로 돌아갑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갑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분 앞에 우리는 다시 섭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나의 자아와 이기심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합하여 다시 살아납니다.
주님, 어차피 죽을 인생입니다. 죄를 사랑하며 잠시 살다가 죽게 하지 마소서.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과 합하여 죽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과 영원히 살게 하는 죽음을 죽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