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이번 한 번쯤, 나 하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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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수 7:1).

이번 한 번쯤

하나님이 주신 승리가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생각 회로 속에서 우리의 승리로 착각되곤 합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것을 이스라엘 모두가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승리는 자신들이 얻은 승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리고성 다음에 만날 아이성이 그들의 눈에 아주 작게 보입니다. 실제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아이성은 여리고성보다 더 큰 크기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은 여리고성보다 아이성 사람들이 소수라고 말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갈 필요가 없으니 이삼천 명만 가게 하자고 말합니다(3절).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작은 일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한 번쯤’ 사소한 일은 자기 자신이 결정해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번쯤’은 자기가 싸움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대장인 것처럼 행동하고 결정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전쟁에 패해 삼십육 명쯤이 죽자 그제야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한껏 교만해졌던 백성의 마음은 한 번 전쟁에 패하자 물 같이 녹아버립니다(4, 5절).

나 하나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여쭙자 패배의 진정한 원인이 드러납니다. 이런 ‘한 번쯤’이 진실을 알게 될 기회를 놓치게 하였습니다. 유대 족속 중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자신을 위해 감춘 것이었습니다(1012절, 21절). 그는 ‘나 하나쯤’은 마음에 드는 것을 챙겨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그는 여호수아가 보내는 “내 아들아”(19절)라는 회개의 호소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옷 한 벌과 금은을 챙긴 것이 그리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21절). 하나님이 그 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한 것이라고 해도(1절), 그게 자기 혼자 한 일이지 왜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번 한 번쯤, 나 하나쯤 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께 바친 것을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