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목요일 장년 교과] 섬뜩한 호소 (사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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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호소하신다. 누군가 마음이 완악해졌다면 그것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거부한 결과이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10).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사명을 위임하시면서 왜 이처럼 기이한 기별을 백성에게 전하게 하셨는가?(사 6:9~10)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이 왜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는지를 설명하셨다(마 13:13~15). 따라서 우리는 이사야가 잘못되었거나 불필요한 기별을 들었다고 오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에(벧후 3:9), 이사야를 유다 백성에게 보내셨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을 파멸에서 건져내어 영원히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분의 호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어떤 이들은 더욱 거세게 반항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계속 호소하신다. 반면 저항하면 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강퍅하게 된다. 하나님의 행위는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게 된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나,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야말로 결정적인 변수이다.
비록 사람들이 그 기별을 거절한다 할지라도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심지어는 예수님과 같은 기별자의 역할은 계속 호소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겔 2:5)고 하셨다. 하나님과 그분의 종들의 역할은, 비록 그 백성이 파멸과 포로로 끝난다 할지라도(사 6:11~13) 그들에게 공평한 선택의 기회를 줌으로써 적절한 경고를 듣게 하는 것이다(겔 3:16~21 비교).

교훈 :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호소하신다. 누군가 마음이 완악해졌다면 그것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거부한 결과이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우리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어서) 출 4:21에서 하나님은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바로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는 구절도 아홉 번이나 나온다(예, 출 8:15, 32, 9:34). 바로는 분명히 자유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강퍅하게 될 수 없었다. 만일 바로가 하나님이 주신 경고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면, 그의 마음은 강퍅해지지 않고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적용 : 그대의 마음이 바로처럼 완악해지지 않도록 지금 순종하며 따라야 하는 성령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마음이 완악하게 되는 이유 –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며, 주의와 경고를 주시고 죄를 견책하신다. 그분은 각 사람에게 그들의 그릇된 행위가 품성에 고착되기 전에 그것들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만일 그가 시정하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행동의 경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개입하지 않는다”(부조와 선지자, 268).

기도
아버지, 오늘도 결코 강요하지 않는 인내하심으로 애정어린 교훈과 조언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단비를 받아들여 선한 열매를 내놓는 옥토처럼 언제나 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