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야고보의 마지막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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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19, 20).

야고보는 편지를 마치면서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구원과 용서함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일은 믿음을 떠난 자들을 위해 계속 수고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자들, 죄인들, 부한 자들 그리고 형제들

야고보는 4장부터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인 호칭과 긍정적인 호칭으로 이리저리 부릅니다. 4-5장의 간음한 여인(여러 사본에는 여인 대신에 간음한 자로 기록되어 있다), 죄인, 부한 자들은 야고보가 형제라고 부른 자들과 다른 자들일까요? 꼭 동일한 자들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간음한 자, 죄인, 부한 자들을 형제라고 부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부한 자들과 예수님

야고보는 부한 자들을 품꾼의 삯을 주지 않고 말세에 재물을 쌓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약 5:3). 그들은 살육의 날에 마음을 살찌워서 울고 통곡할 마음이 없습니다(5, 1절). 이런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부한 자들을 너희라고 부른 것으로 보면 이들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입니다(1, 2절). 그런데 6절에서 바로 그 너희가 의인 즉 예수를 정죄하고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항하지 않으십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자들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길이 참을 수 있습니다(7-12절). 우리는 길이 참는 중에 욥의 인내를 듣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보인 결말은 모두가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은 가장 자비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에(11절) 계속 우리 모두가 돌아올 수 있도록 수고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맹세하지 않지만 고난 당하고 병든 자를 위해서는 엘리야처럼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으로 시작한 야고보는 이제 믿음의 기도로 마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문제 있는 형제들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고보는 마지막까지 미혹함을 받아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믿음의 기도로 우리의 믿음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혹을 받은 형제들을 돌아오게 하소서.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