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말라기 3장 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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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조상 때로부터, 너희는 내 규례를 떠나서 지키지 않았다. 이제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돌아가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는구나.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 주님의 무엇을 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말 3:7~8, 새 번역).

유다 백성은 정의를 버리고 살면서 공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척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너희가 그렇게 나를 기다렸으니 언약대로 내가 너희를 심판하러 가겠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 백성들이 부추긴 일입니다.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지 못해 정의로운 사람을 포기했고, 율법의 기본 의무들을 어겼습니다. 이들의 불의와 불신이 하나님을 괴롭힌 것이지요.
하나님은 유다와 맺은 언약을 변함없이 지키고 계시지만 유다는 언약을 어기면서도 뻔뻔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유다 백성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다. 사실상 이것을 외면했습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내면 복받는 수단이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십일조는 성전 봉사자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가난하거나 소외된 자들의 최소 생활을 위해 조성된 하나님 나라의 세금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성전의 기능, 약자를 돌보는 기능은 마비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시험해보라”하시며 유다의 완악함을 한탄하십니다. 내면 복받음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누는 삶이, 이방의 삶과 구분이 되도록, 오히려 본이 되도록 축복하시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우리입니다.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우리 공동체를 뜻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이웃에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 더 가지려는 욕심,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필요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와 공동체 유지, 선교와 구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비단 십일조를 헌금으로 드리는 행위만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웃을 공감하고, 환대하는 일체의 행동, 소외된 자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