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스스로 존재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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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아브라함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교훈 중 가장 위대한 교훈을 하나님께 배웠습니다.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해 달라는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보고도 살 수 있는 광경은 전부 보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복종했으므로 그리스도에 관하여 받은 이상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죄인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더욱 위대하고 더욱 놀라운 희생을 치르고 계신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경험은 다음의 질문에 답을 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6~7).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말에서 그리고 이삭을 대신할 희생 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건에서,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 속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선언되었습니다. 이교의 희생 제도는 하나님께 전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 세상의 죄악을 짊어질 수 있으십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난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구주께서 감당하실 희생의 사명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교만한 마음에 썩 달갑게 다가오지 않는 그 사실을 깨닫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청중에게 의미심장하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에서 새로운 트집거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미치광이임을 증명하려는 듯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님은 거룩한 위엄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침묵이 큰 무리 가운데 감돌았습니다. 영원한 임재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갈릴리 출신의 이 랍비가 자기의 이름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 이스라엘에게 주리라 약속되었던 자로 선언하셨습니다. “그의 나오심은 옛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미 5:2, 한글킹제임스).

『시대의 소망』, 469~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