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말라기 1장 6-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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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여 보아라. 이것이 너희가 으레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말 1:6~9, 새 번역).

유다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기대한 중흥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괴롭힌 에돔은 여전히 건재합니다(옵 1:10). 이런 상황에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렇게 버려둘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기 사랑을 변호하십시다.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유다를 괴롭힌 에돔을 곧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 백성, 특히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절뚝거리는 짐승을 제물로 드렸고, 자기도 먹지 않을 더러운 떡을 바쳤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은혜를 바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거는 게 낫겠다고 하실 만큼 노여워하십니다. 유다는 장차 온 땅에 흩어진 이방 민족에게서도 예배 받으실 하나님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면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그들의 착각을 바로잡으십니다.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심을 나타내십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지만,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거둬 다른 나라에 주신 일이 없습니다. 혹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까?
요한복음 13장의 언급처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입만이 아닌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아버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얼만큼 교회 사역에 헌신하는가’, 혹은 ‘얼만큼 열심으로 출석하는가’보다 더 중한 것은 하나님을 마음과 삶에 모시고 사는지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고백에 스스로 속지 맙시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