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수요일 장년 교과] 그를 통해 만물을 만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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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붙드시며 인도하고 계신다.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예수님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말한다.

이사야 44:24, 45:18, 느 9:6을 읽어 보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홀로” 세상을 만드셨으며 당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과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데 사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첫째, 바울에게 있어 예수님은 조력자가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히브리서 1:10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시편 102:25~27에서 창조주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다. 둘째, 히브리서 2:10은 아버지를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히브리서 1:2에서 예수님께도 똑같이 적용된 표현이다. 아버지께서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창조하셨다(히 1:2, 10, 2:10).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그 목적과 활동에 있어 완벽한 일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도 창조하셨지만, 창조주는 한 분이시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한편, 히브리서 4:13은 예수님은 심판자이심을 보여 준다. 통치하고 심판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붙들고 계심에서 비롯된다(사 44:24~28).
히브리서 1:3과 골로새서 1:17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붙드시는 행위는 인도와 통치의 개념을 포함한다. “붙들다”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단어 페론(pheron)은 바람이 배를 몰아가는 것(행 27:15, 17), 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묘사한다(벧후 1:21).

<묵상>
사도행전 17:28을 찾아보십시오. 예수님과 그분의 능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진리가 하나님의 자아 부정의 성품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이어서)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맥락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모든 호흡과 심장 박동, 그리고 우리 존재의 매 순간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발견된다.

<교훈>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붙드시며 인도하고 계신다.

<적용>
그대는 어떤 순간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그대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느끼게 됩니까?

<영감의 교훈>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스도 – “사도는 그의 형제들 앞에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그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이루실 분으로 높였다. 그는 공간에서 세계들을 붙드시고 온 우주의 만물들을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시고 끊임없는 활동을 주관하시는 손이 바로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이라고 선언하였다”(사도행적, 471).

<기도>
저의 능력과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저의 삶을 붙드시고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 앞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