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월요일 장년 교과] 저지하려 하심 (사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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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에 커 보이는 장애도 하나님의 눈에는 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보다 더 크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사 7:3).

아하스가 이스라엘과 수리아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정치적인 선택을 저울질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아하스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계셨다. 아하스를 연단시키고 그에게 곤경이 이르도록 허락하셔서 그로 하여금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대하 28:5, 19). 더군다나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는 논리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였으나, 하나님은 그 일이 유다 왕국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아셨다. 즉 그 나라는 이제 이방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게 설득하려고 이사야를 보내어 그의 계획을 저지하고자 하셨다. 마침 왕은 포위에 대비하여 예루살렘의 물 공급을 조사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왜 이사야에게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셨는가?(사 7:3)
이사야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그의 아들을 소개했을 때, 아하스는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누구의 남은 자란 말인가? 무엇으로부터 돌아온단 말인가? 그 소년의 아버지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 이름은 마치 백성이 포로로 잡혀 가리라는 예언의 기별처럼 들렸다. 아니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인가?(‘돌아오다’라는 동사는 회개의 의미도 담고 있음)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주신 기별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 의미이다! 죄로부터 돌아서지 아니하면 포로로 잡혀 갈 것이고, 그 후에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결정은 너의 몫이다.”
왕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기별을 주셨는가?(사 7:4~9)

교훈 : 인간의 눈에 커 보이는 장애도 하나님의 눈에는 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보다 더 크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대의 삶이 굳게 서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사 7:9 참고)

(이어서) 수리아와 북방 이스라엘의 위험은 지나가고 유다는 위기를 넘길 것이었다. 아하스는 그들의 힘을 크게 보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사 7:4)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의지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서기 위해서 그에게 믿음이 필요했다(사 7:9). 히브리어로 ‘믿다’라는 말과 ‘서다’라는 말은 ‘진리’, ‘아멘’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 그는 믿음을 주기 위해 믿어야 했고, 신뢰를 주기 위해 신뢰해야 했다.

적용 : 삶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 지금 그대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영감의 교훈
무력해 보이나 참으로 강한 영혼 – “낙담은 가장 영웅적인 믿음도 흔들 수 있고 가장 확고한 의지도 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여전히 동정하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동기와 마음의 의도를 훤히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일 때에 끈기 있게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업을 지도하는 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선지자와 왕, 175).

기도
아버지, 연약한 기초 위에 세워진 제 삶이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이제 제 삶을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다시 세우기를 원합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제 삶이 단단해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