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빌립보서 3장 10-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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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복사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울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복사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맺히듯, 예수님 께 접붙여진 사람은 예수님의 삶을 열매 맺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원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이런 결심과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3장 초반부에서는 바울이 육신으로도 자신을 신뢰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외적, 종 교적 스펙이 충분한 자랑거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열매가 없었습니 다. 무엇보다 그는 예수님을 얻지 못했습니다.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돈과 스펙 안에는 예수 님의 겸손과 온유함이 없습니다.
자랑거리는 반드시 차별과 분열을 조장합니다. 질투와 낙담이 그를 따라 각 사람의 마음에 개선장군처럼 입성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자랑거리들을 포기합니다. 대신 예수님을 알 아가기 위해, 그리고 신뢰하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보다 귀한 것이 없으므로 예수님만 자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는 오물처럼 버 렸습니다.
글로 써보니 바울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를 선택하고 얻는 가난, 예수를 선 택하고 얻는 불화, 소박한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자랑거리들이 가져다주 는 유익들, 타인과 나를 비교했을 확인할 수 있는 우월함, 이런 것들은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 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것들을 버렸습니다.
자랑할 거리는 공동체 안에서 연합을 무너뜨립니다. 차별과 분열과 계급을 만듭니다. 그래 서 바울은 예수님만 얻고자 용기를 냅니다. 예수님이 본래 가지셨던 창조의 계획이 빌립보 교 회 안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했습니다. 계급과 분열이 아닌 연합을 위해서 말이죠. 그렇게 보면 세상의 가치들은 사람을 사람 아닌 것으로 보도록 반복 숙달시 키는 도구들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얻으려는 마음, 그것만 자랑거리로 삼는다면 비교 나 분열을 넘어서 상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환대합니다. 내 눈에 다른 조건들이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종국에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압니다. 그가 다름 아닌 예수님의 형제이 자 자매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주인으로 모시는 분의 형제라면 어찌 경솔하게 대하겠습니까?
오늘의 삶을 두고 결심해 봅니다. 예수님을 두고 저울질하는 나의 자랑거리 예수님을 더 깊 이 알아감으로, 신뢰함으로 버리기로요. 그리고 불수의적으로 떨어뜨려야 하는 것들은 예수 께서 책임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섭리를 찾고 간구하는 하루를 소망합니다. 아멘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