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웃사는 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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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6)

잘못되다
법궤가 이스라엘을 떠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 있은 지 이십 년이나 되었습니다(삼상 7:2).

사울 왕은 이 일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다윗은 왕이 되자 법궤를 메어 오는 일을 첫 번째 과업으로 삼았습니다. 5장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싸움은 맞대응한 것이었고 자발적으로 한 첫 번째 업무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선하게 시작된 일이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궤를 가져오는 일은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삼만 명의 유력한 사람들을 모았으며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습니다(1, 2절). 백성들도 함께는 하였지만(5절), 이렇게 다윗 중심의 무리와 일반 백성 사이에는 구분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궤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어깨에 메고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왔습니다(3절).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그 궤를 돌려주려고 할 때 이용한 방법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평소에 가까이서 보았지만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았는데, 그들은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궤를 공식적으로 옮기는 일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아미나답의 아들인 웃사는 평소에 집에서 언약궤를 가까이서 보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미나답의 집에 법궤가 이십 년이 있었고 그의 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지만, 그 집이 그로 인해서 복을 누렸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삼상 7:1, 2). 이것은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머물렀을 때 그의 온 집이 복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웃사는 매일 보았던 하나님의 궤를 가벼이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이 일을 맡았고, 소가 뛸 때 손을 대지 않아야 하는 궤를 붙들었습니다. 이 행사 전체에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궤를 가장 가벼이 여긴 웃사에게 진노하여 그를 쳐 죽이셨습니다.

기도) 주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 대하면서도 경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