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하며 그렇게 불안하고,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쭉 뻗은 북해도의 길을 몇 시간이고 달리는 것은 불안하지도,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의 내면에 꾹꾹 눌러 담아 왔던 좌절, 원망, 고독들이 차 안에 쌓인 먼지들과 함께 차창 밖으로 날아갔다.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일찍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잠시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활기찬 아침인데 나는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몸이 좋지 않아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교회에 연락했다. 그렇게 일 년을 쉬었다.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 일주일에 소화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회의도 한 달에 열 개가 넘었다.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직함도 세어 보니 열 개가 넘었다. 경험도 없고 능력도 별 볼일 없었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고 보람도 느꼈었다. 그런데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았다.
딱 그때의 느낌이었다. 이제 막 끝낸 일과 끝내야 하는 일,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포위되어 책상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정확하게 코로나 기간 동안에 유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실패를 거름 삼아 새로운 도전에 가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익숙한 피로에 압도되었다. 거북이처럼 휜 목을 지탱하기 위해 가뜩이나 좁은 어깨는 더 말려 들어갔다.
위험하다. 이대로 또 일어서지 못할 만큼 지쳐 버리면 그때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 이제까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남편의 상황에 따라 끌려다녀야 했던 아내에게 또 그런 막막함을 떠안기기 싫었다. 불안함이 책과 먼지처럼 가득 쌓여 있는 책상 앞을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우리 캠핑 가 보지 않을래?”
“어디로?”
“글쎄, 북해도는 넓으니까 삿포로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 보자. 3박 4일 일정이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우리 캠핑 장비 아무것도 없잖아.”
“텐트 하나 사고, 먹을 거는 대충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나는 차박도 해 보고 싶어.”
“그것도 좋다. 내가 코스를 짜 볼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가 대부분이다. 불안함에 항상 늦게까지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 때문에 홀로 잠들어야 했던 아내와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내일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후회할 수도 있지만 망상에 가까운 상상에 잠시 함께 빠져 보기로 한다.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해도에도 여름은 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짐을 꾸려 차에 실었다. 고속도로는 타지 않기로 했다. 미리 찾아 놓은 차박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며칠이나 일을 쉬어도 괜찮은 건지 살짝 불안했던 마음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뒤쪽으로 사라졌다.
아사히카와 외곽에 있는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차를 세우고 잘 준비를 했다. 꽤 많은 사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차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노부부는 자그마한 승합차에 온갖 살림을 갖추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상상력이 자극됐고 한참 동안 노부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졌다. 차박을 위해 사 온 매트는 덜 부풀어 올랐지만 그 위에 몸을 누인다. 잠자리가 편할 리 없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잠에서 깬다. 하지불안증후군으로 깊이 잠들지 못해 늘 피곤하지만 짧은 수면에도 왠지 모르게 의욕이 넘치는 날이었다. 아내도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설레어서인지 일찍 일어났다. 빨리 출발하기로 한다. 북해도 한가운데 있는 ‘타이세츠산’을 넘어 ‘키타미’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아직 아침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한 대형마트 앞에 차를 세우고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다. 적당한 도시락을 하나 골라 차에 앉아 함께 먹었다. 맛있다. 즐겁다. 피곤하지가 않다. 아무 계획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여행 가는 것을 싫어하던 아내의 얼굴에도 설렘과 기대가 묻어 있다.
어떤 길을 지나갈지, 어떤 풍경과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하며 그렇게 불안하고,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쭉 뻗은 북해도의 길을 몇 시간이고 달리는 것은 불안하지도,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의 내면에 꾹꾹 눌러 담아 왔던 좌절, 원망, 고독들이 차 안에 쌓인 먼지들과 함께 차창 밖으로 날아갔다. 가끔 숲속과 길가에 보이는 사슴과 여우에게 시선을 뺏겼다. 이런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차올라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너무 진지하지 않게, 어색하지 않게 슬며시 손을 잡아 본다. 따뜻하다.
한참을 더 달리니 오호츠크해도 보인다. 일찍 일어나서 이동한 덕에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반도의 숲속을 지나 미리 예약해 둔 ‘라우스’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은 야생 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전기가 통하는 줄로 담장이 세워져 있다. 이용객은 우리 외에 오직 한 팀, 사방이 고요하다. 언덕 아래로는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이번 캠핑을 위해 사 온 캠핑용 의자를 꺼내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뭘 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지켜야 할 마감 시간도 없다. 바닷가 근처 언덕이라 그런지 안개가 차올라 우리 주변을 감쌌다. 내 옆 사람만 보였다. 지금만 보였다.
그 이후로도 여행은 이틀 동안 이어졌다. 오래된 차로 아내와 함께 달렸던 북해도의 모든 길이 다 좋았다. 몇 십 분을 달려도 끝나지 않던 옥수수밭 옆을 달렸던 것도 좋았다.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던 소들을 보며 달렸던 것도 좋았다. 고개를 넘어갈 때 언덕 밑으로 펼쳐진 마을의 풍경도 좋았다. 책상 앞을 떠나 한적한 시골, 초록색 길을 달려서 좋았다. 마음도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대학교 때의 은사는 “쉼이란 숨이 쉬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어떻게 해야 숨이 쉬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쉬는 것이 아니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쉬어지는 것도 아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쉬고 있어도 마음이 허전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지쳐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것, 덕분에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것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위해 불안이라는 동굴 밖으로 나와 볼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 진짜 쉬는 것이 아닐까? 어떤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수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선택과 노력이 진정한 쉼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올해 여름에도 쉼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쉼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 보려 한다.
라명훈
삿포로 삼육 소학교 채플린
2024년 가정과 건강 7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