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 COVID-19)으로 온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로 인해 인류가 경험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 중 가장 큰 보편적 이슈는 어쩌면 변화(change)와 적응(adaptation)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누려왔던 노멀 사회(normal society)가 급작스레 도래한 펜데믹(pandemic)의 강력한 강제적 영향으로 조성된 범지구적인 피동적 수용 환경인 뉴노멀 사회(new normal society)에 적응하는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온 인류는 총체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사실상 가장 민감한 집단이 있다면 이는 인간의 삶에 자연스레 동거해온 종교와 그 역할의 실존적 가치관일 것이다.
이번 사태로 기독교도들이 받은 충격은 놀라울 정도다. 기독교의 뉴노멀 상황은 기존의 전통적 공식인 재난이나 재앙의 발생에 기독교의 부흥과 성장은 비례한다는 관례가 깨어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고 말하므로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한 어떤 종교 기자의 단언은 충격적이다.
어쩌면 샤머니즘화한 한국 기독교의 기복신앙(祈福信仰)이 만들어낸 부수 효과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부정적 생활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이미지의 추락과 함께 기독교, 곧 교회의 존립 가치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기독교인들은 대재앙의 초점이 엉뚱하게 기독교회로 향한 사이드 이펙트(side efect)라며 곤혹스러워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재림교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이런 범지구적 팬데믹 영향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한국 재림교회는 이런 영향에 선제적 대응책으로 ‘포스트 코로나19 (post COVID-19) 대비 실무위원회’(2020년 5월14일 행정위 결의)를 구성해 그 대책을 8월 연례회의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재림교회의 세계적인 대의제(representatives)와 분장(分掌)제 조직(shared administrative organization)의 특성상 갑작스런 변경이나 시각적 변화에 대한 체감 분위기는 다소 덜할 것이지만, 지도자와 목회자들의 지도력 방향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교회 신학과 신앙의 바로미터인 창조주를 경배하는 일과 안식일을 성수하는 전통(계 14:6-12; 출 20:8-1)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재림교회의 예배학 거장인 레이몬드 홈스(Raymond Holmes)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개신교회와 가톨릭의 예배[예전]의 형식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려 했던 세계적인예전의 갱신(liturgical revival) 분위기 속에서도 재림교회는 미동도 없었다고 말하므로 예배의 환경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기별 중심 신앙을 고집하는 변화에 둔감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재림교회의 예배에 대한 본질적 이해(esential understandings)에 기초해 가변(variants)과 불변(constants)의 요소들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재림신앙의 차별성을 재 확인하고자 한다. 재림교회 예배의 불변의 요소에 대한 연구란 예배의 본질(esence)에 대한 재고이며, 예배의 가변적 요소란 예배의 예전적 집행(liturgical practice)과 관련된 연구를 말한다.
역설적일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총체적 변화 분위기 속에서도 재림교회의 예배 중심 신앙공동체(worship-centered faith community)의 신학과 신앙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식일 신앙의 불변적 가치(unchangeable value)와 함께 제시하므로 재림교회의 예배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의 우월성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기독교 예배 중심적 가치(worship-centered value)의 가변성과 불변성 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국 개신교회의 주된 담론 주제는 주일성수, 곧 주일예배의 성수라는 불변(不變)의 개신교회의 핵심기별이 예배당(禮拜堂)이라는 장소와 비대면 예배(uncontacted worship)의 예전, 곧 수행 의식의 가변적(可變的)인 문제로 옮겨가므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즉 기독교신학의 불변적 요소와 기독교 신앙의 가변적 요소가 담론의 장에서 혼재되어 제시되므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하락하는 분위기가 교회 안팎으로 조성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교권(church authority)과 국권(government authority) 사이의 관계 설정과 이에 대한 신자 개개인의 이해의 난해성(難解性)이다. 대부분의 기독교도의 염려는 교권이 국권에 의해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의 행정명령이 법적으로 보호돼야 할 기독교인의 신성한 종교의 자유가 코로나19 사태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다수의 국민을 보호하므로 국난을 극복한다는 공동선(共同善)을 명분으로 앞세운 국가의 강제적인 행정명령과 집행으로 심각하게 침범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의 촉발은 한국의 경우는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의 확산의 주요 모체가 된 특정 종교집단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단체장들에 의해 발표되고 시행된 각종 행정명령이 끼친 영향도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신자들이 고려해야할 부분은 기독교인 개개인이 갖는 교회와 예배를 통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가치와 또 공동체 속에 함께 동거하는 이웃과 국민이 누려야할 행복추구권 사이에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특수 상황이 전개될 때에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보편적, 합리적, 수용적 자세이다. 다수는 이런 상황을 타협과 비타협의 관점에서 타협을 가이사의 것(마 2:21)으로 보고, 비타협적 자세나 실천을 하나님의 것(막 12:17)으로 보므로 상호 모순적 이해가 공존할 시는 핍박을 감수하면서도 비타협을 추구하려는 의식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때때로 본질과 비본질의 문제에 대한 균형진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지만 지난 3월 말 일요일에 미국 플로리다주의 탬파에 있는 한 대형 교회가 주정부의 행정명령을 어기고 두 차례나 집단 예배를 강행했다가 목회자가 경찰에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기독교 예배에서 교회는 필수 시설이라고 주장하므로 많은 신자와 주변 사람에게 기독교의 예배의 진정한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예배와 교회 사이의 관계, 즉 예배와 유형 교회(visible church)와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기독교계 안팎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예로 교회당이라는 전통적 예배당 개념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말씀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는 말씀, 더 나아가 예배가 중심 주제가 되었던 수가의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에서 ’그리스도는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요 4:21)에서 예배의 장소 개념을 예배의 진정성과 신령성 문제로 옮겨 온 것을 통해 지금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신학자와 목회자가 많다.
심지어 예배는 흩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이미 영미권에서 출발해서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는 각종 온라인 교회(online church)와 온라인 예배(online worship)의 역사적 발생을 예로 들며 이에 더욱 적극적인 참여 분위기도 있다. 물론 다양한 이론에서 절대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대안의 부재 중에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유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교회론을 워드(Pete Ward)는 유연한 교회(Liquid Church) 개념으로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공통적 의견은 기독교 예배가 장소개념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를 경험하는 영적개념으로 전환하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예배 자체에 더 세심한 관심을 두려는 신학자와 목회자는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신앙 행위로 생각하려는 전통적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담론에도 대부분의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는 코로나19 상황의 종료와 함께 공동체적 예배로의 복귀를 전제로 위기관리에 대응하는 예배를 제안하고 있다. 그 일례가 내부적으로 상당한 논쟁이 있었음에도, 지난 2월 20일에 발표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위원회는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 기초한 신학적 고려와 실천적 고려를 담은 코로나19 상황 주일예배 형식 제언을 결의한 것이다.
이 결의문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1)신학적 고려의 기본 틀은 무엇보다 공동체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말 것(히 10: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6), 위급 시는 이성과 기독교적 분별력으로 처리(신앙고백 1.6)하며, 예배의 기본 요소인 기도, 찬양, 말씀, 성례(정기적), 헌금 등의 예배 모범은 따르되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 때와 장소, 그리고 형태는 지혜와 분별력 발휘가 필요하며 특히 가정예배(행 2:46; 5:42; 12:12; 롬 16:15), 두세 사람의 모임 등을 고려함(마 18:20). 2)실천적 고려는 첫째 총회가 정한 방식에 따른 당회의 논의는 성경과 교단의 헌법의 원칙에 기초한 신학적 목회적 결정을 하며, 둘째, 가정예배는 공예배의 확장이자 구체적인 실천 장소이나 영상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라는 예배신학적 측면에서 임시적이고 보충적인 조치이다. 셋째, 가정예배 시에 성도들이 뜻과 정성을 다한 예배가 되도록 목양적 인도가 필요. 넷째,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정리되면 즉시 공중예배로 복귀함이 당연하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예배 담론에서 납득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예배에 대한 이해와 예전에 대한 변화에서 교회가 신자들로 구성된 예배 공동체(worship community)라는 사실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교회를 단순히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일반적 개념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그 복음에 일치되게 성례전이 거행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라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The Augusburg Confesion)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신자들의 예배를 위한 모임이라는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의 예배중심교회론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림교회의 예배 중심적 가치는 성경적 신학과 신앙의 발로(發露)
재림교회가 예배를 중히 여기는 이유를 성경과 재림교회의 역사에서 찾아본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예배(shachah, proskune: 창 2:5; 24:26)는 무엇보다 구속론적(soteriological) 측면과 종말론적(eschatological) 측면에서 조명된다. 구속론적 측면에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은 인간의 영원한 창조주이셨다(창 1:27; 2:7).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과 친밀한 교제의 현장인 에덴동산을 인류 최초의 가정이자 가정교회(home church)로 만드셨으며, 첫 예배는 에덴의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에덴교회(church of Eden)는 창조주의 임재(apokalupsis)와 그분의 창조의 역사와 사랑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곳이었다(창 2:1-3). 욥은 그때 새벽별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노래하였다(욥 38:7)고 기록하고 있으며, 엘렌 G. 화잇도 첫 인간을 도덕적 책임과 능력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하므로 인간의 타락하지 않은 지성과 덕성의 조화로움 속에 자발적으로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 그들의 창조주로 경배했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종말론적 이해는 구속주의 구속사업의 완성과 함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주님은 둘째이자 마지막 아담[ho eschatos Adam](고전 15:45)으로, 이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계 21:1), 구원받은 백성은 하늘 유리바다(계 15:2)에서 그분의 보좌를 둘러(계 4:6) 만물을 지으신 주의 뜻(계 4:1)이 이뤄진 것을 인해 그분께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감사(계 4:9)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계 5:13)을 돌리는 회복된 천상예배(restored celestial worship)에 참여한다(계 4:6-1).
엘렌 화잇은 이 장면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대쟁투와 다음과 같이 연결시키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속죄의 풍성한 부와 사단과의 대쟁투에 있어서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해 주실 때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감동되고, 그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으로 금거문고를 탄다. 그리하여 천천만만의 무리는 음성을 합하여 찬양의 대합창을 한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쟁투, 678)
둘째, 재림교회는 성경 상 모든 예언은 그 중심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단 7:9; 계 1:4; 4:2-6, 9-10; 5:1, 6, 7,1, 13, 6:16; 7:9-1, 15, 17; 19:4 5; 20:4, 1, 12; 21:3, 5; 2:3), 이 보좌에 앉으신 이는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경배를 받으실 분(계 4:10; 5:14; 7:1; 14:7; 15:12, 13; 17:12; 19:5; 20:4; 2:)이라는 사실에 신학과 신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림교회의 예배신학(theology of worship)은 대쟁투적 관점에서 이방신(gods)과 우상(idols)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Yahweh, ‘Elohenu, Yahweh, ‘ehad)가 창조주와 구속주로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역사에 핵심주제(esential theme)로 떠오르고 있다(출 20:2; 신 6:4-15; 수 24:14-25; 왕상 18:18-39).
이를 보다 생생하게 제시하기 위해 예배의 궁극적인 회복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이루신 구속의 경륜의 시각적 현현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배운다. 인간의 타락 후, 구속의 경륜의 시각적 모체로 주어진 성소(qodesh/sanctuary)는(출 15:17; 25:8; 레 26:2; 시 20:2; 73:17)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영광의 상징이었던 솔로몬 성전(bayith/temple),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house)으로 이어지면서 출애굽을 통해 인류 운명의 구속적 성취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 하나님을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노래하며 경배했다(출 15:1-18; 왕상 8:29-53).
재림교회가 예배를 중히 여기는 사상은 예언적 말씀을 통해 더욱 선명히 부각된다. 그 대표적 중요 주제 중 하나가 다니엘서에서는 작은 뿔(단 7:24, 25; 8:24, 25)로, 요한계시록에서는 용, 곧 바벨론(계 12:3, 4, 17; 13:1, 4, 5, 1, 15; 14:6-12; 16:19; 17:5; 18:10-15, 21)으로 대표되는 방해꾼 상징을 통해 예배가 대쟁투의 초점이 됨을 선명히 한다. 이 전쟁은 사실상 경배를 누가 받을 것인가에 대한 창조주와 용과의 사이에 있는 예배 전쟁(batle of worship)이다. 특히 스트랜드(Kenneth A. Strand)는 재림교회가 용과 바벨론이 예언의 중심 주제 중 하나임을 요한계시록의 교차대구형(chiastic structure)구조를 통해 우상숭배의 핵심 상징인 바벨론의 멸망이 중심주제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바벨론은 재림교회의 예언연구에서 창조주께 대한 경배를 가로막고, 구주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 경배를 받으려는 거짓 예배의 장본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규정한다(계 14:6-12).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예배는 에덴의 예배가 용과 바벨론에 대한 심판과 멸망으로 회복될 것이다. 사실상 재림신학은 창조, 구속, 재창조의 과정에서 창조주를 경배하는 예배가 관건임을 아래의 예언서의 구조를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 결어
재림교회의 예배 중심적 가치(worship-centered value)의 가변성과 불변성 재고
재림교회에서 예배는 언제나 중요한 교회론적 담론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왔다. 레이몬드 홈스는 재림교회의 종말론적 사명의 핵심에 예배(worship)와 예전(liturgy)이 있다는 것을 세 천사의 기별의 배경(계 14:6-12)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세계교회운동(world church movement)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재림교회에는 독특하고도 구별되는 예전적 사명이 주어졌다. 재림신학과 신앙의 시각적이고도 실천적인 표현은 사실상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서 잘 나타나 있어야 한다. 재림성도에게 부과된 명령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7)이다.
특히 그는 요한계시록 14:7의 후반 부분은 역사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의 둘째 국면, 곧 심판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반면에 전반 부분은 역사적인 배경에서 교회의 주요 활동이 예배임을 묘사한다고 보았다. 재림교회 예배의 중심부에 불변의 예배와 예전 요소들이 있음을 본다. 그 첫째는 재림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면면히 흐르는 불변적 예배의 요소 중 하나는 재림신앙의 출발에 주요 원인을 제공했던 재림과 심판이란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성소기별과 그리스도 강림의 임박성을 담은 기별이다(eschatological sanctuary mesage). 밀러주의자들이 정한 그리스도의 오심이 1843년 봄과 1844년 가을에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의 강림의 임박성은 재림신자들의 신앙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늘 성소에서 심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국면에 들어가셨다는 사실 자체가 유예기간(time of probation)에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이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이 가까웠다는 종말론적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비록 윌리엄 밀러의 다니엘 8:14의 성소의 정결을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으로 해석한 잘못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300주야 예언의 성취가 70주와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 예언의 성취인 1798년과 1844년이라는 재림교회의 해석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재강림의 임박성은 여전히 재림신앙에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의 불발로 1844년 10월 2일 사건이 대실망(The Great Disappointment)으로 기록되었지만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 무리 가운데 세 번째 그룹에 속한 재림성도들은 예언의 연대(chronology)는 맞았지만 기대했던 사건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 무리로부터 지금의 재림교회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기여는 그날이 재림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지막 하늘에 있는 성소 봉사와 연결된 날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심판, 유예, 징조, 예언의 성취 등의 용어는 하늘 성소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되어 재림교회 예배와 예전에 불변적인 관심사안으로 자리해 왔음을 말해준다. 이런 종말론적 인식, 특히 그리스도 재림의 임박성(nearnes of the Parousia)과 연관된 성소의 기별은 재림교회의 출현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밀러운동(Milerite Movement)과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계시 사상 연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과 만물의 역사를 열어주신 분(창 1:1),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시며 그분만이 경배를 받아야한다는 경배의 당위성(當爲性)을 성소와 안식일 제도를 통해 마련해 주셨다고 믿는다(창 1:1; 2:1-3; 출 25:7, 8).
이런 사상의 중심에는 성소에 대한 성경적 연구에서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속론적 측면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창조주(Creator)이시자 구속주(Redemer)에 대한 유일신 경배 사상을 지상 성소를 하늘 성소에, 그리고 하늘 성소를 지상 성소와 연결시키므로 더욱 구체화시켰다. 이런 측면의 연구를 통해 재림교회의 종말론적 기별을 심화시킨 놀만 갈리(Norman Guley)는 요한계시록이 성소와 유대인의 축제인 절기와 연관시키고 있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특히 하늘 성소를 지상 성소와 연결시켜 연중 제사에서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찾아냈다.
둘째, 재림교회 예배신학의 또 다른 불변적 요소는 하나님을 조물주로 경배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도덕률인 십계명, 곧 안식일 계명 속에 명문화 시키므로 재림성도의 신앙과 실천의 삶의 법적 기초가 되도록 하고 있다(출 20:8-1). 밀러운동과 재림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재림신자는 자신의 신원(identity)을 묻는 주변 사람에게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계 12:17; 14:12)을 가진 자들이라며, 두 신앙적 기둥으로 제시하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 곧 안식일을 회복하므로 결국은 참 예배를 회복하는 주역으로 믿었다.
재림교회의 기본신조, 교회론편에서‘남은 자손과 그 사명’이라는 제하에 마지막 시대 즉 배도가 만연한 시대에, 한 남은 자손(a remnant)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도록 불러냄을 받았다고 명문화하므로 이를 불변의 재림신학과 신앙의 중요한 요소임을 천명하였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려는 구속의 경륜의 최종 목표는 죄로 변해버린 에덴(Eden)의 복원(restoration)인 재창조(recreation)이다. 이 과정은 재림교회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곧 법을 어긴 불법(창 2:16, 17; 3:1-7; )의 결과로 온 사망 문제를 그리스도 중심의 사법적 처리, 곧 속량(atonement)을 통해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재림교회의 불변의 구속론신학이자 신앙의 핵심임을 전제하고 있다(창 3:8, 9, 15, 21; 롬 3:23-25; 마 27:35; 고전 1:18; 2:2; 엡 2:16).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유일한 한 분(신 6:4; 빌 2:10)이라는 더 큰 이유가 인류의 구속주(계 4:1; 5:12)라는 사실에서 명확하게 주어진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en tō onomati Iēsou pan gonu kampsē)라며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 신학(Christ-centered worship theology)을 제시한다(빌 2:10). 예배의 이 구속적인 표현을 사도 요한은 일곱교회의 핵심적인 신앙의 가치로 세천사의 기별(계 14:6-12) 속에 동일한 표현, 곧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계 14:7)을 사용하므로 경배를 받아야할 유일한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법적으로 강조하므로 구약과 신약의 탈고(脫稿)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십계명 속에 포함된 안식일 경배에서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출 20:1)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창 3:1-3; 출 20:8-1). 인류의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그분이 창조주시라는 인간과의 본래의 관계와 인간의 구속이라는 또 다른 관계에서 무상으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사법적이고도 도덕적이며, 또 자발적인 행위(moral and judicial spontaneous behavior)이다.
이 사실을 가장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 엘렌 화잇의 저서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의 마지막 장 마지막 단락이다. 그녀는 요한계시록 5:13의‘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는 말씀을 본서의 마지막 성구로 택한다. 엘렌 화잇은 이어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대쟁투의 종결을 선언하자 만물이 그분의 사랑을 찬송[경배]하는 장면으로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만이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므로 자신의 글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셋째, 재림교회의 예배 신학은 재림교회의 세계 선교와 연결되어 있다. 레이몬드 홈스는 교회의 선교적인 능력은 그 교회의 예전의 고결성에 비례한다고까지 했다. 재림교회의 예배는 재림교회의 선교 사명이 끊임없이 모든 예전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초기 재림교회의 출현은 그 기원을 밀러 운동(Mileriate movement), 7월 운동(7th month movement), 재림 운동(Adventist movement), 혹은 제칠일재림운동(Seventh-day Adventism) 등의 용어에 담겨있는 종말론적 기별을 선포하는 선교 운동(mision movement)에 그 기초를 두고 있었다.
담스틱(P. Gerard Damstegt)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재림교회의 출현을 선교사적 기원(historical origin of mision)으로 보고 있다. 알베르토 팀(Alberto R. Timm)은 이 선교 운동의 주역인 재림성도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백성(God’s end-time remnant)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이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전할 세천사의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재림교회의 교회론이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1840년대 중반에 안식일준수 재림교도 사이에서 1844년 실망의 원인 연구와 닫힌 문(shut door)과 현대 진리(present truth) 이론이 세계를 향한 선교가 제2재림운동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이 운동의 결과로 조지프 베이츠, 제임스 화잇, 그리고 엘렌 화잇의 개인 차원의 지도력을 넘어 지금의 유형 교회 조직을 가진 재림교회가 등장했다.
조직을 갖춘 재림교회는 교리적 차별성과 연합으로 세계선교의 사명을 촉진시키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 188년에 미니어폴리스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왜고너(E. J. Wagoner), 존스(A. T. Jones), 엘렌 화잇(Elen G. White)을 통해 율법과 믿음의 전통에 기초한 재림기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그리스도 중심적 기별로 복음주의적인 취지에서 제시하므로 이웃 교단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후 1890년대에는 교단 내에서 이에 반대하는 지도자들과 찬성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선교의 확장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두 형태의 조직 특성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 일치했다.
올리버(Bary D. Oliver)는 두 다른 교회론적 모델, 즉 지역교회를 강조하는 존재론적 모델(ontological model) 유형인 그리스도 중심적 모델(christocentric model)과 교회의 보편적인 연합을 지향하는 기능적 모델(functional model)로 나눈다. 1863년에 지역교회, 합회, 대총회라는 3단계 조직을 1901년과 1918년 사이에 세계선교를 포함한 범지구적인 선교교단으로 발전하므로 재림교회의 세계선교 모티프가 복음주의적 신학과 신앙에 부가되므로 재림교회는 명실상부한 범세계적인 선교(world-wide mision)를 위한 세계교회(world church)로의 조직을 갖게 되었다.
1901년의 재조직에서 연합회와 각부 조직의 여세를 몰아 1903년 대총회에서는 1)대총회장의 기능 복원 2)유럽과 북미를 위한 2명의 부회장 선출 3)교단이 운영하는 모든 기관을 교회의 직접 재산이 되도록 결의했다. 1913년 대총회에서는 총회를 갖는 세 지회, 곧 유럽자양지회(European Division Conference), 북미자양지회(North America Division Conference), 그리고 아시아미자양지회(Asiatic Division Mision)를 가지므로 자주적인 세계선교의 길을 열었다.
1918년에 지회의 총회권을 없애고 대총회 부회장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또 세계 교회 시스템을 1)지방 교회 2)지방 합회 3)연합회 4)지회 5)대총회로 지금의 선교조직 체제를 갖추므로 더욱 일관성 있고 과감한 범세계선교를 위한 틀을 완성했다. 그 결과 1901년부터 1926년까지 매년 평균 12명의 선교사를 파송해 모두 2,937명의 선교사가 해외선교에 파송되었다. 재림성도들은 이제야 요한계시록 14:6-12에 있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세천사의 기별을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재림교회의 간략한 조직사를 통해 재림교회 출현의 시대적 의미와 목적은 분명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재림교회 예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세천사의 기별의 세계적인 선포에 있으며, 이 선포 속에 핵심적 예배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본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계 14:7)이다. 이 사명은 주님에 의해 임명을 받은 사도들(apostelō)에게 먼저 주어졌다. 사도들은 교회에 의해 보냄을 받은 기별자이다.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가 임명하고 교회가 그들을 보낸 것은 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지명한 기관(God’s appointed agency)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도들의 우선적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파해야 할 핵심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며, 이 복음이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 선포되어야 한다. 그들이 전해야 할 영원한 복음(aiōnion euagelisai)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는 것(계 14:7)이었다. 선교사명 진술서에 해당되는 이 구절은 선교의 목적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것임을 간파할 수 있게 한다.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는 두려워하다(phobeō, 7절), 영광(doxa, 7절), 경배하다(proskuneō, 7절, 9절, 1절) 등의 예배와 관련된 동의어가 5회나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예배하다는 용어가 동의어와 함께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복음의 핵심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심판의 문맥 속에 있는 두려워하다(Gr. phobeō)는 말은 존경하고 그분에게 나아오는 것, 그리고하나님께 충성하며 그분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배하다(Gr. proskuneō)란 말의 뜻은 영예를 돌리다 경배하다로 우리가 섬기는 그리스도가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시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다. 세계선교는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선교를 통해 확장되는 것은 선교 지역이나 교회건물 또는 교회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백성과 그들의 모임 공동체인 예배 공동체(worship community)가 확산되는 것이다(마 18:20; 요 4:21-24; 행 1:8; 2:14, 46-47; 롬 12:1).
넷째, 앞서 두 번째에서 이미 개괄적인 부분을 다뤘지만, 예배의 불변 요소 중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안식일(shabbath)이다(창 2:1-3; 출 20:8-1; 막 2:27, 28; 계 1:10). 예배에서 안식일 주제는 늘 날(yom)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예배의 본질은 서서히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게 되어 날짜뿐만 아니라 예배의 내용마저 변질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불변적 기별과 예배의 가변적 상황을 고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거치면서도 오랜 가톨릭의 예전적 예배 전통과 관습으로 성경 중심의 기별, 곧 날(day)과 예전의 본질(esence)에 큰 변화가 왔다.
예컨대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1690년) 제21장 ‘예배와 안식일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7항에서 안식일 예배의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 날(예배일)에 관한 인위적인 가변성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대로 일반적으로 적당한 때를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하고 도덕적이요 영구한 명령으로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에게 순종할 의무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칠 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시고 그 날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출 20:8, 10, 1; 사 56:2, 4, 6, 7). 이것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한 주일의 첫날로 변하였으니(창 2:2, 3; 고전 16:1, 2; 행 20:7) 이날을 성경은 주의 날이라 칭하였고(계 1:10), 세상 끝 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속될 것이다(출 20:8, 9, 10; 마 5:17, 18).
8항이 안식일은 여호와께서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날 사람들은 마음을 준비하고 일상생활의 용무를 미리 정돈한 후에 세상 일과 오락과 그에 대한 생각을 끊고(출 20:8; 16:23, 25, 26, 29, 30; 31:15, 16, 17; 사 58:13; 느 13:15-18, 19, 21, 2), 온종일 거룩하게 쉬며 공동 예배와 사적 예배 그리고 구제와 긍휼의 의무를 행하는 데 바칠 것이다(사 58:13; 마 12:1-1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안식일이란 가변적 성격을 가진 예배일(a day of worship)이다. 여기에 발맞춰 가톨릭의 안식일 관련 예배의식 역시 가변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 한 예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Pope John Paul I)가 발표한 사목 교서(pastoral letter)인 디에스 도미니(Dies Domini), 곧 ‘주의 날’ 문서 역시 기독교 예배의 가변적 성격을 예배일의 변경의 합리성을 제시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사무엘레 바키오키(Samuele Bachiochi)에 따르면 많은 가변성을 지닌 일요일 준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황의 목양 차원의 사목 교서의 놀라운 면은 교황 요한 바오로 I세의 일요일 준수의 위기를 극복하는 성경적 방안 중 하나로 일요일을 주님의 날(tē kuriakē hēmera 계 1:10)인 안식일로 그 의미를 부각시키므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안식일(Sabbath)이란 용어를 일요일(Sunday)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황은 일요일 준수에 대한 방어가 안식일로 둔갑된 것과 또 안식일로 ‘완전한 표현'(ful expresion)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요일 준수가 안식일 준수와 혼합된 것은 일요일을 주의 날, 곧 성경상 안식일과 다를 바 없으므로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하고 권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키오키는 일요일 준수의 이유인 즉 문화적, 정치적 또는 스포츠 활동에 가담하므로 거룩한 주의 날(Sunday holy)로 준수하려는 대신에 일요일이 단순히 휴일의 한 날(a holiday)이나 주말의 한 날(a part of a wekend)이 되도록 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언급을 한 것을 봐서 일요일 준수의 가변성을 불변성 안식일의 시간과 의미로 대체하려는 고도의 목양적 기술로 보고 있다.
교황의 목양 교서는 가톨릭의 교리문답에서 일요일은 매 주일 오는 안식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날을 예배의 날로 준수하는 것은 곧 안식일에 그렇게 해야 할 것을 대치했기 때문이라며 토요일에서 옮겨진 예배일임을 알면서 안식일의 의미만 일요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일자와 의미의 가변성을 지닌 일요일과는 달리 제칠일 안식일은 예배[경배]의 불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 불변의 요소란 안식일의 권위(authority), 의미(meaning), 그리고 경험(experience)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창 1:31; 2:1), 준수 명령(창 2:2, 3; 출 20:8-1; 신 5:15; 막 2:27, 28; 히 4:9), 그리고 관계와 축복의 약속(출 31:13; 레 19:3; 사 58:13, 14)에서 신학과 신앙 측면에 가변성을 지닌 일요일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엘리자벳 플렛트(Elizabeth E. Plat)가 잘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의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창조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속해 있다.
재림교회 예배의 가변성 예전(禮典)과 불 가변성 신학과 신앙
한국연합회는 지난 2008년을 예배 갱신의 해(year of worship renewal)로 정했었다. 한국연합회 행정위원회가 예배를 위해 한 해를 할애하도록 한 결의는 한국 재림교회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던져줬다. 통상적으로 침례, 십일조, 교인 수, 교회개척 등이 수십년 동안 교회 운영과 행정의 단골 메뉴처럼 모든 교회의 사업을 흡입해 들였다. 한국 재림교회사에서는 처음으로 그 한 해를 재림신앙의 핵심(요 4:24; 계 4:6-1; 5:1-14; 14:6-12; )이자 교회의 생명력인 경배, 곧 예배가 모든 교회의 중심 주제가 되게 했다.
그 해에 필자는 한국연합회 목회부의 요청에 따라 홈스(Raymond Holmes)박사의 <재림교회 예배학>(Sing A New Song)을 번역 출판하게 되었다. 그의 학문의 주된 관심은 재림교회의 예배 신학과 예전적 차별성 부각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0년에 한국 재림교회는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팬데믹 위기를 맞아 급격히 감소한 십일조와 침례자 수, 교회 개척 면에서 전에 보지 못한 교회의 침체와 우려 형편에도 불구하고 먼저 한국 재림교회의 예배를 돌아보도록 다시 한국연합회[목회부]와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이 특별한 예배세미나(2020년 6월 27일)를 가지도록 계획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 재림교회가 종말론적 복음의 진수인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는 시대적 명령을 코로나19 이후에 재림교회 선교사명의 핵심 과제로 선택한 것은 지도자들의 영적 통찰력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로 본다. 한국 재림교회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는 말씀에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 4:24)를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교회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모든 염려를 불식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계획한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안긴 충격과 그 이후 변화될 세계에 대한 많은 전문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 같다. 현장예배에서 비대면 온라인 집회와 예배로 인해 파생되는 이슈들은 예배의 불변성과 가변성의 경계가 어딘지가 교회 지도자들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것 간다. 무엇보다 미국의 한 연합감리교회는 교인의 수와 예배 인원에 가장 중점을 둔다고 했으며, 한국 개신교회의 한 지도자는 세미나 발표를 통해 예배 없는 교회, 교회 없는 예배의 지속으로, 공간에 치중한 ‘외형적 교회주의’의 쇠락을 예상했다.
변화의 주제 역시 다양하다. 무엇보다 12.5%의 평신도들이 공적 예배에 출석하는 대신 온라인이나 기독교 방송예배에 참석하겠다고 했으며, 질문 응답자 중 20%가 온라인 등의 이유로 출석교인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일 성수에 관해 2.9%는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으며, 이들 중 45.8%는 월 2회 또는 3회 주일예배에 참석하며, 월 1회가 39%, 그리고 교회에 비봉사자 중 30.5%가 주일예배를 교회에서 반드시 드릴 필요가 없다고 답하므로 주일예배 이탈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헌금 제도에 대해서 응답자 중 60.8%가 온라인 헌금(online ofering system)에 찬성하며, 이들 중 3.6%가 계좌 이체하여 헌금했다고 답했다. 유명설교자의 설교로 찾아 듣는 설교 능력(power of preaching)을 기반으로 교회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와 통계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교회 예배의 가변성 영역을 재확인할 수 있다. 우려하는 것은 예배의 진정성, 곧 신령과 진정(요 4:24)으로 예배하는 전통이 편리한 예배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림교회 역시 이 통계자료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서 가변성 요소는 초기 재림교회의 예배 발전사를 통해 재림교회의 신앙 전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 어떤 환경적 배경에서 교회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서 별도의 예전서를 만들거나 예전의 한 부분인 예배 순서가 고정되어 있지 않는 것도 재림교회의 초기 역사에 영향을 받았다.
재림교회는 고정된 예배 순서(set form)가 없고, 다만 두 중요 부분으로 예배를 나누는데 그 첫째는 찬양, 기도, 헌금으로 회중이 하나님께 찬양과 경외심으로 화답하는 것이고(congregational response),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기별(mesage)이다. 재림교회의 예배를 고교회적(high church) 예전 전통에서 저교회(low church)적인 말씀 중심의 예전으로 기별을 강조한 것도 다 초기의 기독교의 영향이 컸다. 이런 배경에 대해 러브테로브(Theodore N. Levterov)에 따르면 지금의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 영향을 미친 초기 교회의 내외적 형편을 제2대각성운동, 야영회, 감리교회, 성경연구, 크리스쳔컨넥션, 밀러운동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1790년대에서 1840년대까지 있었던 제2대 각성운동(Second Great Awakening)이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가 주도했던 이 운동은 반지성주의(anti-intelectualism)적 영향을 받은 성령선물운동의 형태(charismatic forms)로 미국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다. 이 당시의 예배는 주로 장막이나 대형교회, 또는 공회당에서 가졌으며 하루 종일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전했다. 그 결과 많은 회심자들이 나왔으며 심지어 영적 현현(spiritual manifestations)도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예배는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며, 신음하고, 예언적 계시를 받고, 영광,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리고 “복된 예수여”라며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재림교회 예배는 당시의 개신교회의 기별과는 달리 현대진리(present truth)로 사람을 회심 시키는 것이었다.
둘째, 부루스(Dickson D. Bruce)에 따르면 초기 재림교회의 예배는 매년 정기적으로 여러 날을 모이는 장막 집회(camp metings)의 주요 순서인 설교, 기도, 찬양에 개인간증이 곁들여진 고도의 감정적이고 흥분이 담긴 카리스마 예배(charismatic worship)였다. 부루스는 부가하기를 어린이들과 여인들도 공중 적인 권고, 증언, 그리고 설교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
초기 재림신자들의 예배는 심지어 크게 웃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방언을 말하기도 했다. 엘렌 화잇도 초기 재림신자들이 모이는 집회에 참석해 열정적이고도 감동적인 분위기에 자신도 동참했으며, 심지어 이런 분위기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고 또 참여를 권고하기도 했다.
셋째, 재림교회의 예배가 고정된 순서가 없다고 명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초기 재림신자들의 예배 전통과 문화가 1800년대 초의 감리교회 예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리교 목회자들의 강력한 설교가 청중의 적극적 반응을 유도했고, 설교 중에감동을 받은 청중은 할렐루야, 아멘, 영광, 영광, 영광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허드슨에 따르면 당시의 감리교도들을 ‘소리 지르는 감리교인’(Shouting Methodists)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상, 꿈, 초자연적인 감동, 치유의 기적, 그리고 다른 표적을 통해서도 하나님과의 초자연적 만남(supernatural encounters)을 권고받았다. 초기 재림교도들은 많은 면에서 감리교인의 예배를 닮았다.
넷째, 재림교회의 예배가 성경을 강조하게 된 것은 신학과 신앙의 유일의 근원을 성경에 두고 있었던 신약의 기독교인과 그들의 신앙 전통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크리스천 컨넥션 운동(Christian Connection Movemen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할로비악(Bert Haloviak)에 따르면 1844년 이후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교도들을 대부분의 교단이 배척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교회당과 기구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후에 그들 중 다수가 안식일 준수 운동에 가담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후에 재림교회의 설립자가 된 제임스 화잇과 조지프 베이츠였다. 이들 중 또 다른 한 명인 엘렌 G. 화잇은 감리교인이었다.
다섯째, 재림교회의 지금의 예배가 열린자유예배(open and fre worship) 형태를 갖게 된 것은 밀러운동의 영향이 크다. 밀러운동의 특징에 대해 담스틱(P. Gerard Damstegt)은 묵시적이고도 종말론적인 선교운동(Apocalyptic-Eschatological Motives for Mision)으로 요약
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밀러나 그의 동료 지도자들은 마지막 때, 재림의 때, 밤중 소리, 심판의 시간 기별 등의 주제에 주 관심을 가지므로 일관성 있는 예배나 통일된 예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별히 밀러와 그 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주 관심은 기 언급된 종말론적 관심 사안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성경해석학적 차별성을 갖고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전제 아래 성경의 통일성과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신앙적 가치관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안식일 예배는 주로 성경의 종말론적 주제에 대한 예언 연구가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다니엘 8:14의 역사주의적 해석과 년일 원칙(year-day principle)을 적용해 2300주야의 예언이 BC 457년에서 453년 사이에 시작해 A.D. 1843년에서 1847년 사이에 성취될 것으로 보았다. 또한 작은 뿔에 이 원칙을 적용해 그들은 첫째 이교 로마와 법왕 로마, 둘째는 이슬람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성소가 짓밟히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훼손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2300주야의 끝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가 정결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밀러운동이 재림교회와 재림교회의 예배에 미친 영향은 성경연구에 주안점을 뒀다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휠러(Gerald Wheler)는 이런 가운데서도 균형진 재림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성경연구를 통해서만 말하지 않고, 성령의 임재와 개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의식을 가졌다. 또초기 재림신자에 있어서 참 예배란 하나님 자신과의 전인적 만남(a wholistic encounter)으로 오히려 지성과 감성의 균형진 역동성을 가진 예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초기 재림교회의 예전적 요소의 도입과 예배의 가변적 요소
재림교회의 초기 예배와 예전 역사는 많은 가변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1839년에서 1844년까지 사이 북미의 동부 해변에서 밀러운동이 범교단적 운동으로 성장하면서 밀러와 그의 동료들의 종말론적 설교는 많은 무리를 재림운동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1844년 10월 2일의 대실망으로 그들은 몇 무리로 나누어졌다. 셋째 무리 중의 한 작은 무리는 2300주야는 성취되었고, 밤중소리는 유효하며, 성소 정결은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이 아니라 하늘 성소의 다른 국면 봉사로 믿었다. 이 작은 무리들이 지금의 재림교회 부조들이 되었다.
이들은 재림운동의 진정한 후예이며, 밀러의 전천년설(premilennialism)은 유효하며, 조건적 불멸을 수용하고, 안식일 준수는 셋째 천사의 기별로 상징되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이 무리들은 결국 그들이 속해 있었던 교단으로부터 추방되어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이들은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 개인 집이나 큰 부엌, 곡식을 쌓아두는 곳간, 작은 숲이나 교실 등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후 점차 무리가 늘어나면서 집회를 할 수 있는 집(meting houses)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장소를 마련되기 시작했다. 안식일 준수 재림교인을 위한 최초의 장소는 1842년에서 1843년 사이에 뉴햄프셔에 있는 워싱턴의 그리스도인 형제들(Christian Brethren of Washington)에 의해 세워진 120개의 좌석을 가진 9m x 12m의 직사각형 판자로 된 집이었다. 두 개의 현관문과 강당(auditorium)에 들어가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내부 벽은 흰색 석고판이었고, 일직선으로 양쪽에 나란히 창문들이 있었다. 한쪽 창을 통해 2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묘지가 있었다. 이 건축물이 초기 재림교회의 전형적인 집회 건물 모형이 되었다.
재림교회의 초기 건물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술하는 것은 당시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성도들의 예배나 각종 집회 장소가 그들의 종말론적인 신앙 문화와 엘렌 화잇의 단순한 건물을 가질 것에 대한 권면에 의해 가변성을 지닌 예배 장소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대체적으로 그 당시의 예배 장소는 다양한 곳이었음을 볼 수 있다. 엘렌 화잇은 초기의 재림신자들이 여러 다양한 곳에서 예배를 드린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후 재림교회의 각종 건물이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지어졌다. 초기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신자들은 주재 목회자(stationary minister)가 없었기 때문에 주요 안식일 예배에 부가해서 다양한 집회를 가졌으며, 이 중 하나가 개인 간증을 포함한 비정규적인 자발성 친교 모임(social metings)이었다. 엘렌 화잇은 이런 모임이 가장 가치 있는 모임 중 하나였다고 술회했다. 이 외에도 초기 재림신자들은 순회 목회자가 방문할 시 한 기에 한 번씩 분기 집회(quarterly meting)를 가졌으며, 성만찬예식, 경영위원회, 친교모임 등을 열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가정집이었으며, 먼 곳에서 온 재림신자들은 그곳에 며칠씩 유했기 때문에 종종 이런 집을 재림교회 호텔(Adventist hotels)로 부르기도 했다.
엘렌 화잇은 예배를 위한 장소로 개인과 단체를 구분하고 있다. 집은 가족의 성소이며, 골방과 숲은 개인의 경배를 위한 가장 한적한 장소이다. 그러나 예배당은 회중의 성소이다. 따라서 예배당에서는 시간과 장소와 예배 순서에 관한 규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자녀, 541). 하나님을 경외하는 집은 그분의 품성과 위엄에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5증언, 268).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예배의 장소를 존중하지 않는 한, 그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5증언, 608). 예배 장소가 매우 보잘것없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덜 인정하시는 경위는 없다(6증언, 363). 재산이 있는 자들은 저희 자신의 집의 위치를 정하고 건축하고 장식할 때처럼 하나님을 경배할 성전을 지을 때에 저들은 최대한으로 관대해야 하고 우아한 품위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원고 23, 186년 전도, 37).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장소는 없다(정로, 9). 그대들은 골방에서 기도할 것이요, 그대들이 매일의 업무를 행할 때에도 그대들의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정로, 98).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집에 들어와서 주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이 그분 앞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것 같으면 조용한 가운데 훌륭한 웅변이 있게 될 것이다.(2보감, 194).
4) 엘렌 화잇은 예배 장소와 관련하여 개인 예배와 집단 예배를 구분하는 듯하며, 무엇보다 예배자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정집에서 드리던 예배는 점차 예배자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야영회(camp meting)에서 예배를 공중적으로 드리게 되었다. 야영회는 사실상 켄터키에 있는 장로교인에게서 시작되었다가 후에 감리교인이 주로 예배와 각종 집회 장소로 사용했다. 재림교회는 1863년에 대총회가 조직된 지 5년이 지난 1868년부터 야영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 해 5월 12-18일에 대총회 회의(GC sesion)가 미시간 주 베틀클릭에서 열렸으며, 매년 정기적인 장막 집회를 가질 것을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200명이나 모이는 첫 대형 집회를 미시간의 오타와에 있는 라이트(Wright)에서 가졌다. 이 장막부흥회는 사무적인 일을 제외한 순수한 전도집회(evangelistic series)였다. 10일간의 순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설교, 성경연구, 교회의 각부 보고, 그리고 식사와 휴식 등으로 이뤄졌으며, 교리뿐 아니라 심지어 음식과 건강, 절제에 대한 공부도 했다. 이 집회에는 전도목적으로 방문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이후 점차 고정된 야영장으로 발전했다.
초기 재림신자들은 정규 목회자(regular minister)가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 예배는 설교보다는 성경과 교리를 연구하는 시간이 예배의 핵심이었다. 제임스 화잇에 따르면 매인 주에서 미네소타 주에 산재해 있는 재림신자들을 위한 유일의 목회자는 리뷰 앤 헤럴드지(Review and Herald)였다고 했다. 안식일 예배 중에 재림신자들은 그곳에 실린 말씀을 읽는 일이 흔했다. 무엇보다 초기 재림신자들이 성경(Bible)에 갖는 태도에 대해서 제임스 화잇은 성경은 완전하며, 또 완전한 계시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했다.
성경에 대한 초기 재림신자의 관심은 성경 연구와 교리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정규 안식일예배의 한 부분으로 체계적인 안식일학교가 설립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첫 안식일학교 교과인 유스 인스트럭터(Youth Instructor)를 출판한 이후 성경연구는 안식일의 정규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무엇보다 초기 재림성도의 예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성도들의 참여도(participation)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에 그들의 참여도는 개인 간증으로 잘 나타났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경우는 20분 동안에 38회의 간증이 있었으며, 또 다른 보고에 따르면 60분에서 70분 동안 74회의 간증이 있었다고 한다.
러브테로브는 자신의 연구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초기의 이런 예배가 점차 더 조직화되고 예전화되면서 참여도가 약해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 예로 1906년에 교회의 질서(church order)라는 책이 등장했으며, 리챠드(H. M. J. Richards)는 재림교회가 설교 예배(preaching services) 동안에 따라야 할 통상적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질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1)목회자가 강단에 등단하여 청중과 함께 묵도로 무릎을 꿇는다(the minister entering the pulpit and kneling for a silent prayer with the congregation). 2)개회 찬미(opening hymn). 3)공중 기도(public prayer). 4)둘째 찬미(second hymn). 5)설교(sermon). 6)폐회 찬미(closing hymn). 7)축도(benediction). 종종 특별 찬양(special music)이나 짧은 성경 봉독(a short Scripture reading)이 있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선포였다. 1932년에 교회요람(church manual)이 처음 등장하면서 재림교회의 예배는 더 조직적이고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발성과 열정(spontaneity and pasion)이 약화되었다고 보았다.
초기 재림성도의 예배에서 또 하나의 요소는 노래하는 것(singing)이었다. 엘렌 화잇은 예배에 있어서 노래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노래는 영적 진리로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 예배의 일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 행위이다. 사실, 많은 노래는 기도다.
그녀의 남편인 제임스 화잇 역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제임스 화잇은 노래를 좋아하는 가문에서 출생했다. 초기 재림신도에게 설교할 때 그는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찬미는 ‘주님이 오심을 보리라’(You Wil Se Your Lord Coming)였다. 그는 노래를 좋아했을뿐 아니라 초기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신자들을 위해 1849년에 처음으로 53장으로 된 48쪽짜리 찬미가(Hymns)를 편집하여 출판했다. 찬미가의 이름은 당시 재림신자들의 정체성인 재림과 안식일을 강조하는 찬미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을 위한 찬미가(Hymns, for God’s Peculiar People, That K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the Faith of Jesus)라는 이름으로 편집하여 출판했다. 이후 그의 여동생인 안나 화잇(Anna White)이 재림청년과 어린이를 위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찬미가를 출판했다.
1년 후 제임스 화잇은 처음으로 음악 표기법(music notations)을 가진 새 제목의 찬미, 곧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를 위한 찬미가(Hymns for Those Who K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the Faith of Jesus)를 냈다. 이 찬미가의 출판으로 재림교회의 예배는 악기를 사용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교회 내에 악기 사용을 두고 논쟁이 발생했다. 교회의 기둥역할을 해 온 대부분의 옛날 분들은 교회에서 풍금(organ) 사용조차 반대했다. 이에 반해 젊은 층은 부모와 조부모들과 생각이 달랐다. 두 그룹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임스과 엘렌 화잇은 초기 재림교회의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름다움, 감동,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임스 화잇의 음악적 재능과 교회 예배에 대한 그의 기여는 크다. 그의 기여에 힘입어 교단 차원의 공식적인 찬미가가 1869년에 출간되었다. 이 과정에 교회 음악은 발전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초기 재림교회 신자들의 전통적인 사고, 즉 음악은 회중이 진심으로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하며, 전문 음악가를 초청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 있어서 장소, 설교, 성경연구, 참여도, 노래 등에 가변성이 있었다. 장소는 가정집에서 정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고정된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설교는 성경 연구로 많이 대체되었고, 노래는 회중이 함께 참여하여 부르는 회중 찬미가 재림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변적 요인이면서도 불변성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신령과 진정으로(요 4:24)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의 참여도이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여 러브테로브는 다음과 같이 재림교회의 가변성 예배의 요소를 초기 재림교회의 신자들의 예에서 찾는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초기 재림교회의 신자들은 본래 예배 신학(theology of worship)을 갖지 못했다. 단지 19세기의 다른 교단으로부터 예배에 필요한 요소들을 빌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재림신자의 예배는 감정과 인지 지능적 요소(emotional and cognitive-intelectual components)를 적절히 잘 조화시켜 하나님과의 전인적 만남(wholistic encounter)과 성경의 기본적인 선포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둘째, 초기 재림교회 예배에 엄격한 질서는 결여되어 있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신자들은 높은 참여(highly participatory)의식을 보여줬다. 지금은 이상한 방법(strange ways)라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는 카리스마와 감정의 표출(charismatic and emotional displays)을 정상적으로 보았다. 이런 요인 중 하나는 엘렌 화잇의 빈번한 계시가 예배 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문의 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친 형식이 예배의 감동과 활력(pasion and vibrancy)을 잃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예배의 핵심적 요소로 재림교회의 예배는 복음선포적(evangelistic)이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재림신자들은 그들이 어떤 형태의 집회를 가지든지 그 목적은 재림기별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신원과 선교사명, 그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제시하기 위해 노래를 포함하여 예배의 모든 순서에는 차별성이 있었다.
넷째, 재림교회의 예배는 고정적(static)이지 않고, 예배의 의미와 적절성을 찾아 환경과 필요에 따라 다양하고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극단적 카리스마 분위기가 있었으나 엘렌 화잇의 조언에 따라 극단성을 피하게 되었다. 노래, 오르간과 다른 악기들의 사용이 재림교회 예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점차 예배가 정착되면서 재림교회의 예배는 항시 규정되지 않고(prescriptions) 오히려 제안하는 형편(sugestions)에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19 대비 불변성과 가변성 예배의 요소 요약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에 대한 인식은 초기 재림교회의 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선적으로 재림교회는 출발부터 예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니라, 많은 주변 다른 그리스도인 무리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재림신자들은 예배의 핵심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켰다.
예배의 불변적 요소이자 재림교회 예배에서 우선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개인적 예배나 집단적 예배에서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God’s active presence)를 의식하는 것이다. 페르난도 까날리(Fernando Canale)는 재림교회의 예배와 예전 원칙을 엘렌 화잇의 글을 중심으로 작성한 자신의 논문에서 1)예배의 일반원칙(기원: 창조주, 실존: 제자도, 특성: 신령과 진정, 기쁨: 친구 만남 2)회중 예배의 원칙(실존: 신의 임 재, 끌림: 부활한 그리스도 3)예전의 원칙(창조성: 순종, 내용: 성별성, 의문: 오직 성경, 영적 효력)을 제시하며 그 중에서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를 경배자들이 의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제시한다.
로드리게스(Angel Manuel Rodriguez)는 재림교회 예배의 핵심을 1)우리의 숭경(崇敬)과 경배의 대상은 창조주이심(창 1:1; 느 9:6; 골 2:15-17) 2)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의 구속주(Redemer) (계 4:1; 5:12) 3)하나님의 특별하심(uniquenes of God)이 자신을 예배의 진정한 중심(true center of worship)임을 확인하심으로 보았다.
아울러 그는 재림교회 예배의 요소(elements)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회중 노래(Congregational Singing)는 경배자들의 신앙, 소망, 감사, 그리고 필요의 감정을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이 노래는 권고(시 95:1; 98:1; 149:1)와 명령(시 9:1; 47:6)이며, 결국 온 우주가 유일한 참 하나님께 동일한 노래를 노래하므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배 노래에는 악기가 동원된다(시 150).
2)십일조와 헌금(Tithe and oferings)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반응이며 성경적 예배의 핵심이다(시 95:2; 147:7). 십일조와 헌금은 그분을 우리의 언약의 구주로 승인하는 표현이며 그분과의 공식적인 관계(formal relationship)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분께 대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다(창 28:2; 레 27:30; 대상 29:14; 말 3:10).
3)말씀의 선포(Proclamation of the Word)는 개신교회 유산 중 하나이며, 단상의 중앙에 설교단(podium)을 놓는 것은 하나님의 자아 계시(God’s self-revelation)에 근거하여 그분을 경배하는 합리적 행위이자 우리의 양육을 위해 있으며, 우리를 향해 구원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으로, 구원의 소식 안에서 우리는 기뻐한다(딤후 3:16, 17; 롬 12:1; 행 4:4; 롬 10:14, 17; 고전 1:23; 롬 8:3-34; 딤후 2:8).
레이몬드 홈스는 예배와 설교는 사람들을 찬양과 경배 가운데 계신 하늘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곳으로 인도하며,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그분 편에 서기 위하여 생애의 우상을 버릴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설교자들은 예배자들이 신학적 논쟁이나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온 선명한 기별을 경청하므로 주님이 설교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한다(고전 1:23; 롬 8:3, 34; 딤후 2:8).
4)기도는 주님과 교통하는 표현이며, 마음과 정신과 육체를 포함하는 예배의 전인적 특성(wholistic nature of worship)을 나타낸다. 기도는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kneling)와 서서 하는 기도(standing) 앉아서 하는 기도(siting down), 그리고 엎드려 하는 기도(prostration) 등이 있다. 성경은 다양한 기도 자세를 보여준다.
무릎을 꿇은 예에는 다니엘, 스데반, 베드로 등(단 6:10, 행 7:60; 행 9:40)이 있다. 이런 자세는 기도로 복종과 헌신을 다짐하는 표현이다. 서서 하는 기도 자세는 성경에 흔한 자세로(대하 20:5, 13; 삼상 1:26; 욥 30:20; 더 5:2; 렘 15:1; 슥 6:5; 막 1:25; 계 7:9) 언급되어 있다. 앉아서 하는 기도는 흔하지 않지만 몇 예를 통해서(삼하 7:18; 왕하 4:;38; 겔 8:1; 3:31) 주님 앞에 개인적으로나 단체로 배우는 자세로 주님의 안내와 지도를 필요로 하는 형태의 기도다. 마지막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는(왕상 1:47; 막 14:35) 절대적인 복종과 숭경의 자세로 왕 앞에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거나 환영할 때(삼하 14:4; 삼상 28:14; 대하 20:18; 시 95:6; 민 16:45; 수 7:6; 삼하 7:16; 시 95:6)의 자세이다. 재림교회의 예배 시에는 앉거나 서서, 또는 무릎을 꿇는 자세가 주로 사용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불변의 전통처럼 여겨졌던 예배당(main sanctuary)에서 드리는 예배의 장소가 가정이나 개인이 있는 곳으로 옮겨지고, 예배자와 설교자가 직접 얼굴을 대면하여 참여하던 설교도 온라인 영상으로, 그리고 각종 예전의 순서들도 다소 달라지고 있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세대 간의 예배 신학과 예전 집행 방법 등에서 오는 갈등으로 교회의 연합(unity)에 부정적인 요소들도 등장하는 것 같다. 이런 논의와 갈등은 예배의 불변의 기별과 경외심과 가변성을 가지고 있는 각종 예배의 순서조차 마치 개인의 사상과 문화에 맡겨지는 듯한 무질서한 분위기는 재림교회의 시대적 정체성과 사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데니스 폴틴(Denis Fortin)이 제시한 것처럼 전통적 재림교회의 예배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찬양에 기초한 예배 골격(traditional Protestant hymn-based worship format)에 따라 설교가 중요한 요소지만 현대인, 특히 젊은이와 신세대의 생각은 재림교회의 전통적인 말씀 중심 예배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논문이 제시하고자 하는 예배와 예전의 가변성과 불변성을 예배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되, 건전한 지성적 도덕적 사고를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엘렌 G. 화잇의 신학과 사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엘렌 G. 화잇이 예배와 예전과 관련하여 강조한 것은 예배에 대한 성경적 원칙(Biblical Principles of Worship)이다. 이 원칙은 사실상 불변성을 지닌 요소(unchangeable elements)들이다.
1)하나님만(God alone)이 예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God the Creator)이시며,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다(창 2:1-3; 출 20:8-1; 레 23:2). 2)예배의 성경적 의미와 기초를 훼손하는 외형적 예배(exterior forms of worship)의 무익함이다(출 20:4-6, 23). 즉 예배에는 내적 경건(Inner Piety)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엘렌 화잇은 이교의 풍습과 전통을 따르는 이런 외형적인 예배가 죄인을 위한 참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므로 바벨론 포로의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보았다. 3)영적 갱신은 외적 형태와 달리 참 예배는 무엇보다 영적(foremost spiritual) 이어야 한다(요 4:21-24). 참 예배는 개인의 생애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얻어지는 열매이다. 아울러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지식에 영감을 받는다(요 17:3). 4)성경 원칙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Obedience to God’s Wil)으로 보고 있다(마 25:34-40). 참된 예배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기도와 권고와 도움말은 빈번히 나무에 매다는 값싼 열매이다. 그러나 선행 즉 곤핍한 자나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은 좋은 나무에서 저절로 자라는 참된 열매이다.(2증언, 24)
엘렌 G. 화잇은 상기의 성경적 예배의 원칙 외에도 예배를 경험하는 것(Experience of Worship)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하나님 면전에 나아갈 때 가져야 할 경외심(reverence, GC, 436, 437) 2)예배가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진 감정(emotional balance)을 가지는 문제(2SM, 31) 3)예배의 시간, 장소, 방법 등에 질서(order)가 있어야 한다(5T, 491; 1T, 145, 146) 4)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설교(sermon)의 중요성에서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며, 단순하고, 짧고, 영적이고, 고상해야 한다(GW, 153-160; 1SM, 167, 168; 3SM, 375; Ev, 153; 2SM 16, 17). 5)기도(prayer)에서 경외심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이유는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은 신성한 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GW, 78). 기도는 진지하고, 단순하며, 진심 어린 기도이어야 한다(2T, 581; GW, 17). 6)음악(music)과 노래는 예배의 한 부분이며, 기도와 마찬가지로 예배 행위로서 하늘 합창대와 조화를 이루어 순수하고, 고상하며, 하나님께 영혼을 감사한 맘으로 드려져야 한다(PP, 594; Ed, 168; 1T, 145, 146; Ev, 506, 509; 9T, 143).
재림교회의 예배 지침(Guidelines) 요약
재림교회 대총회는 세계 선교에 예배(worship), 상황화(contextualization), 그리고 혼합주의(syncretism)에 대한 지침을 마련했다. 본 지침은 지구선교문제연구위원회(Global Mision Isues Commite/ADCOM-S)가 만들고 성경연구소(BRI)가 교정한 것으로 203년 6월과 7월에 열린 대총회 행정위원회(ADCOM)에 제출된 첫 번째 지침으로, 교회 행정자, 교육자, 그리고 특별히 비기독교환경에서 복음을 전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예배의 형식과 상황화, 그리고 혼합주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시되었다. 아울러 재림교회의 음악에 관해 대총회는 재림교회 음악 철학(A Seventh-day Adventist Philosophy of Music)을 마련했다. 이 문서는 재림교회 사명 진술서(statements)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가장 최근(2010년)에 개정된 문서이다.
1. 예배의 형식(Form of Worship)
비기독교국가에서 재림교회가 지속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접촉함에 있어서 수용 가능한(aceptable) 환경과 불수용(non-aceptable) 예배 환경에서 참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백성을
초청하는 것이 재림교회의 기별과 사명에 있어서 중요하므로, 재림교회의 종말론에 있어서 대쟁투의 말미에 중심 주제가 경배와 경배의 대상이기에 재림교회 예배가 지속적으로 다음의 국면들을 고려하여 제시해야 한다.
1)하나님은 예배의 가장 중심에 계시며 최고의 대상(supreme object)이시다. 2)집단 예배는 그분께 존경과 영예를 돌리기 위해 존경심과 겸비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몸(Body of Christ) 이신 그분의 임재(his presence) 안으로 경외, 자복, 기도, 감사, 그리고 노래로 나아 와야 한다. 3)우리는 이성과 감성이 중요 역할을 하는 복잡한 피조물(complex creatures)이므로 몸과 마음과 정신과 감정으로 참 예배를 표현하며, 재림교인으로 훈련과 자아 통제 아래, 예배의 중심인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인격에 적절한 균형(proper balance)이 요구된다. 4)재림교회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풍부한 교제와 연합, 창조에서 보여진 큰 주제인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구속의 경륜, 그리스도의 생애,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봉사, 그분의 영광스런 재림을 선포하는 재림교회의 신학으로 이끌어야 한다. 5)음악은 그분을 찬양하는데 사용해야하며, 단순히 개인에게 좋은 느낌을 주려고 과도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2. 상황화와 혼합주의(Contextualization and Syncretism)
본 지침서에서 상황화는 복음기별을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고의적이고도 차별적인 시도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재림교회의 상황화는 다양한 세상에서 복음 사명을 성취하는 중요한 책임에 의해 그 동기가 부여된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지도에 기초하며, 성경의 진리를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식에서 소통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 일을 위해 상황화는 성경에 충실하고, 새로 받아들이는 문화(new host culture)에 의미가 있어야하며, 모든 문화는 복음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과 실천을 전달하는 방식의 의도적인 상황 화는 성경적이고, 합법적이며, 필요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교회가 오해, 정체성의 상실, 그리고 혼합주의 위험에 직면한다.
역사적으로 적응은 세 천사의 기별을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하는데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비기독교 지역에 교회가 들어갈 때 종교적 진리와 오류를 혼합시키는 혼합주의의 문제는 지속적인 도전과 위협이다. 그것은 진리를 곡해하고 진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오류와 혼합 시키므로 타협하는 사단의 운영 방식인 악과 선 사이의 대 쟁투에 대한 재림교회의 이해에 의해 조명되어야 한다. 상황 화의 목적은 모든 기본 교리를 높이고 그들로 하여금 충분히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혼합을 거절하면서도 동시에 상황화 하는데 최고로 좋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다음의 분명한 지침을 따르도록 한다.
1)맹목적인 상황 화는 비상황화만큼 이나 위험하므로 원거리에서 행하지 말고 특정 문화 상황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2)상황화는 세계교회 지도자, 신학자, 선교학자, 지역 사람들, 그리고 목회자들이 포함되어야 하는 한 과정이다. 이들은 진리와 오류 사이를 구별할 수 있는 성경적 세계관의 핵심요소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3)특정 문화 요소의 검토는 문제의 특정 문화 요소의 의미에서 문화적 내부자들에 의해 상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4)성경이 말하는 문제나 또는 관련 문제 모두를 조사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다. 5)반성과 기도의 맥락에서 성경적 통찰력은 규법적이어야 하고 문제가 되는 특수한 문화적 요소에 적용되어야 한다. 분석은 다음의 결과 중 하나로 인도해야 한다. 즉 특수한 문화적 요인이 성경의 원칙에 조화되어 수용하거나 또는 그리스도인 원칙에 조화되게 수정하거나 아니면 성경의 원칙에 배치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다. 6)이렇게 해서 받아들였거나 수정한 특별한 문화는 신중하게 실천한다. 7)시험 기간을 거친 후 결정한 것을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중단해야할 지, 수정해야할 지, 아니면 유지해야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끝으로 모든 진정한 상황화는 성경의 진리에 종속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결과들을 가져다 줘야 한다. 지구 교회의 연합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엡 3:18) 가기 위해 서로에게, 또 서로의 문화에, 그리고 서로의 통찰력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므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