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해 후 첫 안식일 맞은 구례교회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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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교회 성도들은 역대급 수해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피난처되신 하나님께 의지하며 회복과 위로를 얻고 있다.
읍내 입구에 들어서자 ‘자연으로 가는 길’이라는 구례군의 브랜드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교회로 향하는 곳곳에서는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고, 유실된 도로를 복구하는 일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밀짚모자와 마스크를 쓴 자원봉사자들은 손에 장비를 들고 어디론가 바삐 오갔다.

시가지로 들어갈수록 수해의 상처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중심가인 터미널과 5일장터 주변에는 물에 젖은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뒤섞여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침수 농기계를 수리하거나 가전제품을 고쳐주는 이동서비스도 여기저기서 이뤄졌다. 간이천막에서는 이재민을 위한 식사봉사가 한창이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긴 장마에 이어, 이번엔 폭염이 시작되면서 이재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더위와 싸우느라 이중고를 겪었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지난 15일도 피해주민들은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쏟아지는 비지땀을 닦아낼 겨를도 없을 만큼 바빠 보였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삼대삼미의 고장’이라며 가장 살만한 곳으로 손꼽았던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마을은 며칠 사이 400mm가 훌쩍 넘는 폭우가 쏟아지고, 서시천의 제방이 무너지며 전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13일 기준, 전체 1만3000가구 중 10%에 달하는 1184가구가 침수 당했고, 13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경지 421㏊가 물에 잠기고, 가축 3600여 마리가 폐사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1260억이 넘는 규모다.

구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20여 가구 30명 남짓한 성도들 중 절반 가까운 12가구(합회 보고 기준)가 피해를 입었다. 서임순 집사는 1600여 평의 감농장과 집이 완전히 침수돼 거처를 옮겨야 할 처지다. 정대웅 장로와 서채영 집사 등은 4000여 평의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전기로 장로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과 밭작물이 유실돼 수 천 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현장 – 수해 후 첫 안식일 맞은 구례교회 표정

5일장터에서 건어물상점을 운영하는 손정자 집사는 미역, 다시마 등 제품과 기계가 물에 떠내려가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최규식 목사는 “어림잡아 추산할 뿐이지, 실제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쉽게 환산되지 않을 정도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들의 집으로 잠시 떠나 있는 분도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전기로 장로는 “7일 저녁부터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여기에 용담 섬진강댐 방류와 인근 바다의 만조가 겹치며 피해가 커졌다. 8일 새벽부터 시내 거의 전 지역이 물에 잠겼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손을 쓸 틈이 없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곽맹심 집사는 “안식일 아침이었는데, 정신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가 피해를 당했다. 물이 빠지면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실의에 빠진 이재민과 성도들이 믿음으로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전국의 성도들이 기도와 응원을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성도들은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며 마음을 추슬렀다. 정대웅 장로는 안식일학교 교과공부에서 히브리서 11장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구원의 약속을 결단코 거두지 않으신다. 어렵고 힘들지만,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자”고 다독였다.

정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만히 담아두지 않고, 저마다의 삶에 적용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삶이 선교정신으로 충만해지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사방으로 전하게 된다. 그것은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기쁨 가운데 재림기별을 전하자”고 강조했다.


현장 – 수해 후 첫 안식일 맞은 구례교회 표정

최규식 목사는 요한계시록 2장10절 말씀을 본문으로 전한 이날 설교에서 마지막 시대, 남은 무리에게 임하는 ‘고난’을 조명했다. 그는 “각자에게 주어지는 고난을 어떻게 마주하고, 견뎌내는가에 따라 멸망이 아닌,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십자가를 앞세워 고난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는 영원한 하늘의 영광에 이르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라고 권면했다.

이어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승리하셨고, 완전함을 이루셨다. 우리도 세상의 빛이신 그분을 저마다의 삶에 안내자로 모셔야 한다. 우리를 굳건하게 하실 그분을 바라보자. 그래야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이를 견디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예수님을 붙잡을 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도들은 “원치 않는 고난으로 지치고 낙담할 때도 있지만,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믿음의 눈을 더욱 높이 들어 승리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갑작스런 수해로 망연자실하며 실의에 빠져 있는 모든 피해주민에게 풍성히 임하길 간구하며, 서로 치유와 회복의 손을 맞잡았다.  
  
구례교회는 1974년 당시 전남 광양군 다압면의 관동교회에 다니던 박도신 장로 가족이 구례군 간전면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정예배소로 시작했다. 1980년 읍내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광주북부교회에 출석하던 박성수 장로 부부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선교가 활성화됐다. 전세방 한 칸에서 안식일을 구별하여 예배를 드렸지만, 장로교인이던 집주인이 “한 지붕에 두 교파가 있을 수 없다”며 쫓아내는 등 남다른 설움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인구 공동화와 노령화로 선교가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다양한 지역사회 감화력사업을 통해 부흥의 비전을 키워가고 있다. 심각한 홍수피해를 입고 시름에 잠긴 요즘이지만, 그 꿈은 꺼지지 않는, 아니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오늘도 이 작은 교회의 선교역사는 그렇게 한 페이지를 또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