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는 무엇이며 어떻게 나타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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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하나님의 진노는 무엇이며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근거 없이 감정적인 분노를 터뜨리시는가? 바울은 이 구절에서 분노한 신들을 달래야 한다는 이교적 개념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하나님의 진노는 무엇인가?

인류는 모두 잃어버림을 당했음:

인사 및 편지의 목적을 쓴 후(롬 1:1∼17) 바울은 복음의 영향력에서 멀어진 인간의 상태를 묘사한다(1:18∼3:20).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 없이는 인간은 모두 죄된 상태로 잃어버림을 당한다.
하나님의 진노(1:18)와 하나님의 의에 대한 계시(1:17)는 대구적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행동의 두 가지 보완적인 국면으로 제시된다. 죄된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을 움직여 인류에게 그분의 은혜를 베풀도록 한다. 그분의 진단과 치유가 함께 움직인다는 말이다.        
로마서 1:18∼3:20에 나타난 논증은 연속적인 동심원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진행된다. 18절은 가장 바깥에 있는 원으로, 우주적인 기소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정죄 받은 상태로 있다. 이 기소가 이 문단의 “표제”이다.
첫 번째 부분(롬 1:18∼32)에서 바울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해명해야 한다.”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첫째로(18∼20절)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계시를 알리고 그것이 정당함을 말한다. 사람들이 불경건하고 불의한 일을 자행하여 진리를 막고 하나님을 업신여길 때 그분의 대응은 불가피하다.
그러고 나서(21∼23절) 사도는 인간 존재가 하나님을 거절하는 점진적인 단계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으로(24∼32절) 이런 거절의 도덕적 결과를 자세히 묘사한다. 로마서 1:18∼32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도덕적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그 다음 부분(2:1∼11, 17∼29)에서 그는 명백하게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바울의 언어적 표현:
로마서 1:18에서 바울이 “진노”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로 쒸모스가 아니라 오르게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면 흥미롭다. 오르게라는 단어는 주로 불의한 상황에 대해 나타낸 건설적인 형태의 반응인 분노의 감정을 가리킨다(참조 막 3:5; 눅 21:23; 엡 2:3 등). 그러나 헬라어 쒸모스는 부정적인 분노의 형태 곧 파괴적인 분노를 묘사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된다. 예컨대, 헤롯왕은 “심히 노하여”(헬라어 쒸모오마이) 베들레헴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였다(마 2:16; 참조 눅 4:28; 행 19:28).
쒸모스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로마서 2:8과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번 사용되며(14:10, 19; 15:1; 16:1, 19; 19:15), 항상 마지막 심판의 때와 관계된 문맥에서 나온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거두어지고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마지막 일곱 재앙으로 대표된 하나님의 진노(쒸모스)가 세상에 부어진다.
현재 시제로 되어 있는 “나타나다”라는 동사(롬 1:18)는 지금 하나님께서 복음의 전파나 기타 일들을 통해 인류에게 뭔가를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들의 계속적인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오르게)가 촉발되고 있다. 어리석게도 모든 세대 및 개인들이 이렇게 은혜를 거듭거듭 거절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는 모두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사실은 진노한 “하나님의 위엄과 그분의 감찰하시는 눈 그리고 그분의 진노의 넓은 범위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하늘 아래서 아직 복음 아래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그분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1)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라는 구절은 매우 포괄적이다. “경건치 않음”(헬라어 아세베이아)은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을 뜻하고, “불의”(헬라어 아디키아)는 “악함”, “부정의”를 의미한다. 이미 <70인역>(2)에서 짝으로 나온 “경건치 않음”과 “불의”(시 73:6; 잠 11:5)가 여기서는 형용사 “모든”(헬라어 파산)으로 수식되는데, 이는 인류의 전적 타락(3)을 요약하는 말이다. 이 두 용어는 십계명 중 두 부분의 위반을 포함한다. 같은 순서를 따라 로마서 1:18∼32에서 주제가 더 발전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떠나 배도하는 것은 부도덕한 삶을 낳는다.
바울에게 “진리”는 단순히 지적인 동의를 나타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행해야 할 어떤 것(2:8)을 말한다.
동사 “막다”(헬라어 카테코)는 여기서 “저지하다”, “포로로 잡다”, “방해하다”, “숨 막히게 하다” 등(참조 눅 4:42; 살후 2:6, 7)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불어 넣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저지되는지가 로마서 1:19∼32에서 설명된다.

로마서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의 의미: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노”(헬라어 오르게 쎄우)라는 구절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진노”는 인간의 격정에 비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다른 성경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여기서 인간의 언어에 더 적절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anthropomorphism)을 하나님께 적용했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이 죄를 철두철미 거부하시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의 표출을 통해 남녀들이 정신을 차리고 악한 행동에서 돌이키기를 바란다(렘 36:7; 사 42:25; 12:1).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이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에 공포의 장면을 조장하는 것은 잘못이고 무책임한 일이다”(F. Hasel, “The Wrath of Go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website]).

성경에서 진노는 하나님의 품성의 본질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국면이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세계의 파멸이나 그의 피조물의 망가진 삶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개념은 구약에 그 뿌리가 있다(왕하 22:13; 대하 12:12; 스 10:14; 시 78:31; 사 13:13; 26:20 등).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최후의 심판 및 “여호와의 날”(습 1:14∼18)과 결부되어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보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가 역사의 과정 중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법이 범해졌을 때 뒤따라오는 불가피한 보응의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바울이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24, 26, 28에 서술된 대로,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들의 반역의 불가피한 결과에 내버려두심으로써 그분의 진노를 표현한다.”(4) 어떤 의미에서, F. 쉴러(F. Schiller)가 한 유명한 말처럼 “세상의 역사가 이미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5)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에 대한 그분의 예기된 반응임:
여기서 하나님께 적용된 “진노”라는 용어는 인간의 죄된 행위 및 악에 대한 하나님의 예기된 반응을 나타낸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불법으로 인해 생긴 그분의 불쾌하심의 무서운 표출이다.”(시대의 소망, 753).
복음의 한쪽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그분의 메시야됨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통해 그들이 구원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초청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진노, 곧 그분의 구원을 거절하는 모든 자들의 삶에 나타난 죄에 대한 그분의 정죄를 보여 준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지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면(3:21∼31), 은혜를 거절한 인류의 지위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진노”가 인류의 마땅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표현한다면 반대로 “은혜”는 하나님의 마땅한 가치를 말해 준다. 복음에는 항상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포함된다.

Roberto Badenas

<미주>

(1) J. A. Bengel, Gnomon of the New Testament, 5 vols., 1742, quoted by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MI: Eerdmans, 1996), 102.
(2) 로마자 LXX 곧 70은 BC 2세기에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을 나타낸다.
(3)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라는 말은 인간이 전적으로 악한 존재라기보다는 그의 인격의 모든 기능 곧 그의 정신과 육체가 모두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4) F. D. Nichol, ed.,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 vols. (Washington D. C.: Review and Herald, 1980), 6:477.
(5)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년)는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자 극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