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감과 위로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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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목사는 코로나로 단절된 관계에서는 때때로 정답보다 해답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기고 = 김정태 목사(베트남 PMM 선교사) / 상담심리사 1급,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졸

■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K 집사의 남편은 다재다능하면서도 가정적이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도 친절하고 싹싹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그런 남편이 곁에 있지만, K 집사는 늘 외롭고 공허한 느낌이다.

어느 날 K 집사는 남편에게 교회에서 L 집사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경험을 토로했다. K 집사는 식사당번으로 한 팀을 이루고 있는 L 집사가 식사봉사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제대로 준비도 해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당신이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왜 남 얘기를 해. 내가 엄청 객관적이어서 말하는데, 당신도 보면 지적할 게 한두 개가 아니야”

K 집사는 그런 남편의 반응이 무척 섭섭했다. 집안일을 잘 도와주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마음 한편으로 외로웠다.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공감하고 이해주지 못한 남편은 상대를 외롭게 만드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정답을 주지 않으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버렸다.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공감적 대화’에 관한 적절한 장면이 등장한다. ‘해태’(손호준 분)는 여자친구와 싸우고 난 후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극 중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금요일에 내려가야 하는지, 토요일에 내려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야기를 들은 ‘나정’(고아라 분)과 ‘윤진’(도희 분)은 답답한듯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여자친구가 원하는 건 ‘네가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해태’에 ‘나정’은 다른 예를 들어 설명했다.

“여자친구가 이사를 했어. 그런데 그 집이 새 집이야.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그렇다고 문을 열면 매연이 들어와서 계속 기침이 나. 이때 남자친구가 들어 왔어. 남자친구에게 ‘자기야, 오늘 이사했는데,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문을 열면 매연 때문에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이때 남자친구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나정’이가 내놓은 정답은 “괜찮니? 병원가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다른 친구들은 ‘나정’의 답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을 열고 닫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공감 받지 못하거나 위로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답답해하거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울면서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며 다급하게 물었다. 딸은 타지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지쳤는지, 왜 자신이 엄마아빠와 함께 있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곳의 환경과 사람들에 대해 연신 불평을 쏟아 부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아빠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딸의 이런 불평에 지쳐버린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네가 그곳에서 잘 생활해야 아빠가 이곳에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어.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면 아빠가 어떻게 이곳에서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겠지. 어디를 가나 다 마찬가지야.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

그러자 딸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 아빠의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라고 말했다. “상담을 배웠다는 사람이 그곳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딸아이가 타지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잘 성장하고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 입장에서는 “정답”이었다. 그러나 딸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아빠의 태도와 바람은 “정답”도 “해답”도 아니었다. 힘든 타지 생활에서 지켜버린 아이는 아빠에게 공감과 위로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 받고 싶었던 것이다.

■ 코로나 사태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의지력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의 제약이 많아져 가정 내에서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때문에 가정은 일터, 학교, 놀이터, 그리고 교회가 되었다. 온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스트레스도 그만큼 늘어간다.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감정적으로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찰스 두히그 박사는 그가 저술한 <습관의 힘>에서 마크 므레이븐이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 중에 67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갓 구운 쿠키를 담은 그릇과 무를 썰어서 담은 그릇을 한 끼를 굶은 모든 학생에게 나란히 놓았다. 절반의 학생에게는 무를 먹지 말고 쿠키만 먹고, 다른 절반의 학생에게는 쿠키를 먹지 말고 무만 먹으라고 했다.

쿠키를 먹으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기분 좋게 쿠키를 먹었다. 반면 무만 먹으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에 무만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5분 후 연구자는 실험실에 들어와서 피실험자들에게 15분 동안 기다리라고 요청한 후,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문제를 30분 안에 풀어보라고 했다.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핸드벨을 울리라고 말했다. 사실 그 수수께끼는 실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쿠키를 먹었던 피실험자들은 평균 19분 동안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무만 먹었던 피실험자들은 8분을 버티지 못하고 핸드벨을 울렸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이를 통해 무레이븐은 의지력을 많이 쓰면 피로해져서 다른 일에는 그만큼의 의지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힘들게 한다. 또한 전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생계유지의 곤란을 느끼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교회는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성도들 간의 교제도 단절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서적, 영적인 단절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 정답 대신에 해답을 먼저
우리는 지금 과거와는 사뭇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생활과 종교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로 인해 사회적, 종교적인 교제가 줄어들면서 영적,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추석 명절 연휴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한 장소에서 보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 번째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유해야 한다. 통제가 되지 않는 자녀나 가족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조그만 일에 화를 버럭 내는 자신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정서적, 행동적 퇴행이 일어난다. 통제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에너지 충전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 곁을 벗어나 친구와 놀면서 억울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아이는 곧장 부모의 품으로 달려온다. 상처 난 아이의 마음에 사랑의 반창고 역할을 하는 건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다. 엄마의 사랑과 위로를 통해 아이는 소진되어버린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고 존중 받을 때 우리는 방전된 감정 에너지가 충전이 되어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표현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가족 간에 서로의 부정적인 감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서로를 존중해주고 이해주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너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한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면 상대를 공감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너무도 높은 표준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자신들이 가르치는 백성까지 종교와 도덕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었다. 때문에 이들은 상대를 공감하기보다 상대의 잘못을 쉽게 비난하고 지적했다. 누군가 속상한 마음을 토로할 때, 재판관의 입장에 서지 말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변호사의 입장에 설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정답보다 해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힘들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공감하지 않고 바른 소리하는 사람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의 입장을 헤아리는 대신, 자신의 경험의 틀과 입장에서 문제를 직관적으로 보려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마치 누가복음 18장에서 성전에서 기도를 드린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태도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착각한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려는 대신에 직관적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칫 상처를 주기 쉽다. 특히 가족 간의 대화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려는 태도는 배우자나 자녀들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서로의 마음의 문을 닫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함께 나눠보자.
“수고했어” “힘들었지” “그럴 수도 있지”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