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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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를 극복하면 새로운 차원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해하며 얻은 사랑이다. 그래서 의지적인 사랑을 <제2의 콩깍지>라고 부른다.

핑크 렌즈 효과(Pink Lens Effect)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에 씌었다고 한다. 심리학 용어로는 ‘핑크 렌즈 효과’라고 한다. 이 상태를 표현하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영원히 함께 구름 위를 걸을 것만 같고, 머릿속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펑펑 벌어진다.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 찾아온다”(당신 내 편이라서 고마워, 192). 사랑에 빠지면 온통 생각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하루 대부분을 연인 생각으로 산다. 눈뿐 아니라 감정과 정신까지 핑크빛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고, 눈앞에 없어도 볼 수 있다.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연인은 늘 바로 앞에 있다.

사랑의 3단계
헬렌 피셔(Helen E. Fisher) 교수는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라는 책에서 사랑의 3단계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갈망(lust)의 단계이다. 그런데 만남이 지속되지 않으면 관계는 쉽게 끝난다. 두 번째 단계는 강한 끌림(attraction)의 단계이다. 이 단계가 콩깍지가 씌워지는 단계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끊임없이 생각나는 단계이다.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대방과 있었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연인의 폭력적인 성향도 진짜 사랑해서 그렇다고 착각하고, 주변 사람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결합한다. 사회 심리학자 스탠턴 필(Stanton Peele)은 이런 상태를 ‘마약 중독 상태’와 같다고 한다. 황홀하고, 즐겁다가 혼자라고 생각되면 슬픔과 공허감이 밀려와 다시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애착(attachment)의 단계이다. 갈망과 끌림을 거치면서 애착의 단계를 밟는다.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는 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콩깍지의 유효 기간
사랑의 열병도 현실에 부딪히면 결국은 벗겨진다. 콩깍지가 씌었을 때 작용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은 황홀하고, 행복하게 만들지만, 내성이 생겨서 점점 분비가 감소하여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랑의 유효 기간을 최장 3년으로 보고 있다. 유효 기간이 정해진 콩깍지 상태는 고통과 갈등이라는 현실을 만나면 일생일대의 위기를 직면하게 된다. 갈망과 끌림으로 시작된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 넘어가게 된다. 화학적이고, 수동적인 사랑에서 부부가 만들어 가는 사랑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갈등을 겪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불화를 극복한 부부는 낭만적인 사랑보다 더 큰 행복을 경험하게 되며,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유효 기간이 지난 콩깍지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라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제2의 콩깍지
“3년이 지나면 콩깍지가 벗겨지고 연애의 감정도 사라지고 부부의 삶이 찾아온다. 부부의 사랑은 연애의 수동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노력해서 만들어 가는 적극적인 사랑이다. 내가 선택하는 의지적인 사랑이다”(위의 책, 197). 불화를 극복하면 새로운 차원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해하며 얻은 사랑이다. 그래서 의지적인 사랑을 <제2의 콩깍지>라고 부른다. 부부가 노력해서 만든 두 번째 콩깍지는 미래에 부부에게 닥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강한 결합을 만들어 준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의지적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함께하며 행복한 추억을 새로 만드는 것이 제2의 콩깍지가 씌워지는 과정이다.

관계 방식을 바꾸라
지금 이 시대는 낭만적인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속이고 있다. 부부가 갈등을 겪으면 사랑이 식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배우자의 단점과 문제, 나 자신의 단점과 상처를 부부가 함께 풀어 가는 과정에서 부부의 사랑이 깊어진다. 이것이 성숙이다. 결혼은 성숙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 후에 갈등을 극복하며 성숙해지는 것이다. 부부 관계가 깨지면 가정은 파괴된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가? 사람에게는 성장통이 필요하다. 결혼에도 성장통이 있다. 성장 배경, 경제관, 양육 방식, 시간관념, 청결 개념 모두가 다르다. 갈등은 결혼의 실패가 아니며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겪는 문제도 아니다. 부부가 함께 넘어야 할 통과 의례이다. 그래서 해결이 어렵다면 가정 법원으로 달려가지 말고 부부 관계 회복 프로그램(예, 부부학교)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성숙한 부부만 경험하는 행복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핵심은 무엇일까? 배우자에 대한 시각과 관계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부드러운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화를 내거나 입을 닫고 있지 말고 용기를 내어 다가가자. 그리고 회피하지 말고 입을 열어 부드럽게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위로받기 위한 싸움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고통이 생기면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한다. 자신의 고통을 배우자가 먼저 알고 친밀감을 충족시켜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부부 싸움을 한다. 미워서 하는 전쟁이 아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위로받기 위한 사랑싸움이다. 그런데 위로를 안 해 주면 화가 난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배우자가 원망스럽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고함을 치고, 한편은 회피하고 도망을 간다. 이 불화의 고리는 깊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친밀감이 사라진 것이 싸움의 원인임을 기억하자. 결코 미워서 벌이는 싸움이 아니다. 갈등 관계일 때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서로를 채워 주지 못하는 관계가 악화되면 정서적 분리 단계로 넘어간다. 기대도 없고, 상처받을 일을 만들지 않는다. 사실 부부 싸움은 친밀해지고자 하는 노력이다.

용기와 믿음
배우자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과 용기가 있다면 극복의 기회는 남아 있다. 부부의 회복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다. 그 첫 번째 산은 용기이고, 두 번째는 회복에 대한 믿음이다. 접근은 내가 하는 것이다. 자기방어를 포기하자. “여보, 나는 당신이 필요해! 나는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어. 당신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 회복을 원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와 믿음의 산을 넘으면 드넓은 평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 사랑의 핵심은 정서적 유대감이다. 함께 웃고 울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배우자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배우자의 아픔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어떤 문제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성숙한 부부의 모습이다.

성시현
『시조』 편집장

가정과 건강 9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