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법들은 아직도 적실(適實)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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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법들은 아직도 적실(適實)한가?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레 11:1, 2).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모세의 식사 법 준수를 반대하는 두 가지 주요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부정한 짐승과 관련된 법만을 중시하고 기타 부정과 관련된 법(예컨대 출산한 여인의 부정; 레 12장)은 소홀히 여기는 것은 독단적이다. (2) 신약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련된 규정을 폐지했다. 이 견해들을 따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음식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믿는다.

짐승의 부정: 이러한 의견들에 반하여, 식사 규정의 계속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주는 여러 근거가 있다.

1.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것의 배후에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따라서 당신의 백성도 거룩함을 위해 부르셨다는 것이다(레 11:45; 벧전 1:15, 16).

2. 오경에 나타난 서로 다른 종류의 부정에 관한 비교 연구는, 짐승의 부정은 독특한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부정의 기본적인 두 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다.
(1) 부정한 짐승의 부정은 항구적이고 선천적이며 유전적이고 비제의적이며 보편적이지만(창 7:2, 3; 레 11:1-47; 20:25, 26; 신 14:3-21), 기타 유형의 부정은 획득된 것이고 일시적이며 의식적(儀式的)이다(레 5:1-13; 11:24-40; 12:1-8; 13:1-46; 15:1-33; 16:26-28 등).
(2) 부정한 짐승의 부정은 전염되지 않는다. 그런 짐승은 그것의 부정을 옮기지 않는다. 살아있는 부정한 짐승은 전염되는 부정의 여섯 가지 근원(죽은 동물, 시체, 다양한 피부병, 곰팡이, 생식과 관련된 유출[피나 정액])에 속하지 않는다.
(3) 부정한 짐승을 만지거나 운반하는 것이 성전을 방문하거나 성소에서 예배하는 것 등과 같은 사회적 및 종교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진 않는다.
(4) 부정한 짐승을 정하게 만드는 규정은 없다. 다시 말해서, 이런 유의 부정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그것을 정결케 하거나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5) 이런 음식 규정에 불순종하는 데 대한 구체적인 형벌이 없다. 그러나 형벌이 없다고 하여 그것들을 가벼이 여기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 규정은 성소에서 의식(儀式)을 통해 속죄할 수 없는 죄의 범주에 속한다.
(6) 이런 식사 법은 구약의 지상 성소 봉사나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여호와의 가시적 임재(셰키나)와는 연관되지 않는다.
(7) 이런 식사 법의 기원은 모세 이전 시대로 거슬러 가며(창 7:2, 3), 따라서 기타 유형의 부정에 관한 법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다.
(8) 오경의 식사 규정은 객이나 이방인(히브리어 게르)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레위기 11-15장에 나온 부정의 전 체계 중 식사 법만이 사냥과 관련된 법을 통해 객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속력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레 17:13; 참조 창 9:4; 7:17, 18).

3. 레위기에 나오는 거룩함에로의 강한 부르심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베드로가 거룩하라고 강하게 권고하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 베드로가 거룩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모세의 식사 법을 다루는 성경구절에서 나왔다(레 11:44, 45).

4. 가증한 것(히브리어 토에바)으로 말해진 부정한 음식과 우상숭배 및 온갖 부도덕한 행동 등에 대한 경고(레 18:22; 신 7:25; 스 9:1)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이것들이 신약 시대에도 계속된 도덕적 문제(참조 행 15:20; 겔 33:25, 26)였음을 가리킨다.

5. 모세의 법은 전체로서 완전하고 서로 긴밀히 연결된 면모를 띤다. 어떤 법들(예컨대 우상숭배, 매춘, 동성애, 근친상간 등을 금하는 법들)이 단순히 오경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버릴 수는 없다. 가장 큰 두 개의 계명도 출처가 오경이다(신 6:5; 레 19:18).

6. 건강과 관련된 법은 건강뿐만 아니라 거룩함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7. 부정한 음식에 관한 법은 신약에서 폐지되지 않았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정에는 예수를 궁극적 성취로 가리키는 표상학적 또는 상징적 성격이 전혀 없다. 반면, 제사 의식과 관련된 규례들은 그것들이 예표하는 실재가 도래하면서 법적 유효성을 상실했다(단 9:27; 엡 2:15).

신약과 부정한 음식: 음식 규정을 다루는 신약의 본문들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헬라어를 잘 구분해야 한다. 아카싸르토스(“부정한”)는 구약의 가르침을 반영하지만, 코이노스(“속된, 오염된”)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접촉으로 인한 오염”으로 알려진 랍비들의 특정 개념과 관련된다. 정한 것이, 잠재적으로 부정한 것일지라도 부정한 어떤 것과 접촉하면 코이노스(“오염된”)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가복음 7:18, 19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더럽혀진 손으로 먹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의 유전과 성경의 법을 대조하고, 영적인 더럽힘과 육적인 더럽힘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음과 정신의 순결이 배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0:14에서 베드로는 정한 짐승이라도 부정한 짐승과의 접촉을 통해 오염될 수 있으므로(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라 랍비들의 가르침) 그 짐승들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정한 짐승들을 코이노스하다(부정한 짐승과 접촉을 통해 더럽힘)고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베드로(유대인)가 이방인과 접촉함으로써 자신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했다(참조 행 10:28; 11:12).
모세의 식사 법의 유효성에 대한 확증은 피를 먹는 것을 금한 데서 찾을 수 있다(행 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된 네 가지 쟁점(행 15:20, 29)이 레위기 17-18장에 같은 순서로 나오는데, 이것들 모두가 “우거하는 타국인”에게 적용되었다는 것(17:8, 10, 12, 13, 15; 18:26)은 매우 의미 있다: (1)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17:3-9). (2) 피를 먹는 것을 금함(17:10-14). (3)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 것(17:15, 16). (4) 성적 부도덕을 금함(18:1-30). 레위기 17:10-14에 비추어 볼 때, 사도들의 이 네 가지 판결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법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레 17:13을 참조하라).
로마서 14장과 고린도후서 8:10에서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우상과의 접촉으로 오염되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음식이 우상과 접촉되어도 음식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음식도 그 자체가 더럽혀지진(코이노스) 않는다고 바울은 천명한다(롬 14:14). 바울이 아카싸르토스(“부정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라.

“역사적인 관점에서, 예수께서 토라의 식사 법에 반하는 것을 가르쳤다고 보는 것은 수많은 신약 학자들에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David J. Rudolph, “Jesus and the Food Law: A Reassessment of Mark 7:19b,” The Evangelical Quarterly 74. 4 [2002]: 293).
“예수께서 가져오신 단절은 구약의 근본적인 교리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와의 대조에서 드러난다.”(René Péter-Contesse, Levitique 1-16, Commentaire de I’Ancien Testament, 3a [Geneva: Editions Labor & Fides, 1993], 178).

결론: 부정한 음식에 관한 문제는 의식법들과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중요하게 취급한다고 하여 독단적인 것은 아니다. 신약의 어떤 본문도 그것들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정이 폐지되었다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지될 수도 입증될 수도 없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식사 법을 지켰다는 이유로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의 표현이다. 우리 주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식탁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무언의 증거자가 된다. 그분의 계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을 칭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