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아내는 만족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새카맣게 타 버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막막했던 가옥은 거의 새 집이 되었다. 양 기둥에 간신히 의지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던 집은 마을에서 제일 튼튼한 보금자리로 바뀌었다. 깨진 유리조각과 흩날리는 잿가루 때문에 발 딛기도 어려웠던 실내는 깨끗하게 새 단장했다. 다리가 불편한 부부를 위해 기존 시멘트 계단은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 목재데크로 교체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다.
꼭 한 달 만이다. 영남합회 군위교회(책임자 정철진 장로)에 출석하는 이 모 할아버지 부부의 집에 화재가 일어나 고령의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만큼 딱한 처지에 놓였다는 <재림마을>의 기사가 알려진 후 전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답지했다. 지역교회와 개인, 단체에서 3000여만 원의 자금이 십시일반 모였다. 부부도 자신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700만 원을 내놓았다. 크게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딱 알맞은 금액이었다.
영남합회(합회장 남시창)와 합회 평신도실업인협회(회장 김영삼)도 금일봉을 보내 힘을 실었다. 밀알건축선교봉사단(단장 김광윤)과 예천 변화산교회에서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일손을 보탰고, 홍성교회의 어느 장로는 도배와 장판을 무료로 시공해 주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생면부지였지만, 그저 재림성도라는 이유 하나에서였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인부들도 따뜻한 취지에 공감해 임금의 절반밖에 받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한 가구점에서는 식탁을 선뜻 기증했다. 싱크대도 반값에 구할 수 있었다. 폐기물업체에서는 쓰레기를 공짜로 처리해줬다. 시청에서는 부부를 기초수급자로 지정해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 주기로 약속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입주예배가 열렸다. 아침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때마침 멈추더니, 반짝 맑은 하늘을 내보였다. 그동안 난방도 되지 않는 허름한 컨테이너에서 겨우 바람만 피한 채 살아왔던 노부부는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건복지부장 장대기 목사와 청소년부장 오창규 목사 등 합회 부장과 군위교회 성도들이 자리를 같이해 축하했다.
선교부장 김동섭 목사는 레베카 솔닛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 등장하는 ‘재난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인용한 기념설교에서 “이곳이 바로 재난 속에 천국을 경험하는 연대와 사랑의 현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쪼록 절망 속에 성도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두 어르신의 믿음이 더욱 강해져 앞으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김 목사는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기 위해 지붕을 뜯어 침상을 옮긴 친구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예수님께서는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한 여러분의 믿음을 보셨음을 확신한다. 화재로 인해 큰 시련에 빠졌지만,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넉넉하게 실천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할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합회 평실협회장 김영삼 장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기꺼이 협력해 주셔서 이렇게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아낌없이 도움을 베풀어 주신 전국의 모든 성도에게 평실협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분들이 큰 용기를 얻고, 신앙에 잘 뿌리를 내려 구원에 이르는 하늘백성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생업마저 뒤로 한 채 작업에 매달린 정철진 장로는 “기적 같은 일”이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룬 전국의 성도들과 하나님의 사랑에 정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정 장로는 “처음에 화재 소식을 듣고 왔을 때는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이 모든 과정이 이분들이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걸음이었다”고 돌아봤다.
노부부는 “우리 평생에 이런 축복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격스럽다. 모든 분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아직 신앙은 약하지만, 그런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해 주신 것 같다. 앞으로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 이렇게 좋은 집을 선물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예배에서 참석자들은 500장 ‘나 주의 인도받으니’를 찬미했다. “때때로 괴롬 만나면 때때로 기쁨 만나네 나 어느 경우 당하나 늘 인도하심 받겠네”라는 가사가 마치 이들의 간증처럼 들렸다. “예수 나의 손 붙잡고 늘 인도하여 주시니 나 주님의 제자되어 늘 주만 따라가겠네”라는 노랫말이 그들의 다짐처럼 다가왔다.
화재 당시만 해도 구도자였던 부부는 이제 군위교회의 거룩하고 신실한 성도로 구별됐다. 시련과 연단의 시기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이들은 십자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여생을 살기로 약속했다. 지난겨울은 유독 춥고 매서웠지만, 성도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3월의 마지막 날,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메마른 고목 같던 노년의 삶에 화사한 꽃망울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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