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 지도자들이 1888년 기별을 거절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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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과 그녀의 저술들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그 답변들
101 Questions about Ellen White and her Writings

[본 연제는 최근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공식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오른
네티즌들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것임]


질문 68: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1888년 기별을 거절했는가?

네티즌의 질문: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존스와 와그너가 전한 1888년 기별을 거절했다고 말했습니까?

답변: 엘렌 화잇의 글들에 그러한 진술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써 화잇이 엘렌 화잇 전기 제3권(외로운 세월들 1876-1891년), 394-397쪽에서 이 문제에 대해 요약한 것의 일부분을 인용합니다.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와 그것을 앞선 목회자 협의회는 매우 중요한 일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것이 제시되었을 때 나타난 상당한 저항을 상기하게 한다. …그것의 배경 및 발전과 관련된 몇 가지 점을 상고해 보아야 한다. …
5. …당시엔 모든 회의를 보고하는 관행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의 회의 기록이 거의 없다. …
7. 교회의 입장 확립에 대해 말하자면, 논의된 신학적인 질문들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문제를 말하는 한결같은 증언은 혼합된 반응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1893년에 A. T. 존스에 의해 간명하게 묘사되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다른 이들은 완전히 배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중도의 입장을 취했고, 그렇게 이해하였다.”―대총회 회보, 1893, 185쪽. 엘렌 화잇과 그밖에 사람들도 그런 입장을 견지했다. 남아있는 기록들을 가지고는 세 무리의 수가 각각 얼마나 되었는지를 정하기는 불가능하다.
8. 대총회 즉 본 교단이 1888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배척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뿐더러,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후 40년이 지나고 화잇 여사가 죽은 지 13년이 되었을 때에야 생겨났다. 그 당시의 어떤 기록에도 교단이 그것을 배척했다는 암시가 없다. 엘렌 화잇의 진술 어디에도 그렇다고 말한 곳이 없다. 그러한 교단적 배척에 대한 개념은 그 총회에 참석했던 지도자들의 증언이 있었는데도 거기에 참석도 하지 않은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14.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및 관련 문제들은 엘렌 화잇이 자주 말한 주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 경험의 여러 사건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 문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거기에 참석했던 어떤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개인들과 교회가 입은 손실에 대해 이따금씩 언급하였다. 엘렌 화잇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 총회에서 재차 강조된 중요한 진리들을 회복하고 밀고 나감으로써 그것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함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