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 정대성 목사의 아들 정관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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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M 4기 선교사로 지원해 올해 대만에서 활동하게 된 정관유 목사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하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사명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올해 파송되는 PCM 4기 선교사 중에는 유독 눈길이 가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관유 선교사다.

그는 지난 2004년 PMM 2기이자 대만으로 파송된 첫 선교사였던 고 정대성 목사의 아들이다. 정 목사는 대만 중부 차오툰교회를 개척해 중화권 복음화의 발판을 놓던 중 신병을 얻어 2008년 귀국했다. 국내 복귀 후에는 당시 시 외곽에 있던 영천교회를 금호강 인근으로 이전해 영천강변교회의 터를 잡는 등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병이 악화해 2017년 눈을 감았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전도열을 꺾지 않던 영천강변교회는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 중 하나로 꼽힌다.

얼마 전 제주에서 훈련을 마친 정관유 선교사는 파송을 앞두고 선교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혹여나 비자 발급이 지체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날마다 동료 선교사들과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만나 말씀을 묵상하고, 활동 계획을 세우는 등 벌써부터 분주한 모습이다.

그에게 대만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7살의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놀았던 시간이나 또래 PMM선교사 자녀들과 어울렸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해 전, 혼자 여행을 갔다가 찾았던 옛 동네에서 부모님의 노력과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소중한 교회가 없어져 가슴 아팠던 씁쓸한 기억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인터뷰 – 고 정대성 목사의 아들 정관유 선교사

“물론 건강상의 문제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PMM선교사 사역 기간인 만 6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귀국한 것에 무척 아쉬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요.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 잘 몰랐지만, 이제라도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어도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보고 배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시도해보려 합니다”

그는 자신의 선교사 지원 소식에 어머니(김미성 사모)가 매우 좋아하셨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부모님이 다하지 못한 1년의 기간을 아들이 이제라도 ‘보충’하게 된 것 같다며 뿌듯해하셨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이 크면 아버지처럼 해외선교사에 지원하겠다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그런 면에서 선교지가 대만인 것도 참 다행이다.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부담이 있지만, 귀한 기회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하다.

반치아오행복교회로 배정된 정관유 선교사는 아버지가 하고 싶어했던 사역을 자신도 하고 싶다. 차오툰교회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등 교육기관과 인접해 있어 아버지는 학생.청년 전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또한 구도자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려 한다. 교회로 인도해 장래 대만 선교를 이끌어갈 ‘제2의 선교사’로 제자화하고 싶은 욕심이다.

“어느 나라든 2030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높잖아요. 게다가 대만은 대학생선교나 청년사업의 예산이 무척 적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활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들과 같은 세대의 청년으로서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는 선교를 펼치고 싶습니다”


인터뷰 – 고 정대성 목사의 아들 정관유 선교사

비단 대학생선교뿐 아니라 다른 연령대의 구도자들을 위해서도 “젊음을 불사르겠다”며 다부진 포부를 내비친다.

그는 자신 외에도 6명의 동료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 교회가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떠나는 해외선교여서 마음이 무겁지만, 모두의 건강과 성공적인 활동을 위해 마음 모아주길 바랐다. 또한 앞으로 남은 모든 준비과정과 현지 적응, 사역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길 기대했다. PCM선교운동도 1000명선교사운동처럼 많은 청년이 참여해 활성화되길 희망하기도 했다.

‘관유’(灌油)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제사장이나 선지자, 왕 등 하나님의 일꾼을 세워 위임하거나 성소의 성물을 성별할 때 사용했던 거룩한 기름을 일컫는다.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 재료가 섞여 향기를 내는 관유는 성령의 다양한 사역과 은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제 그 이름처럼 선교사의 기름부음을 입고 아버지의 숨결이 서려 있는 땅으로 가는 아들은 그래서 더 가슴이 뜨겁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아들의 약속이 뭉클하다.

“1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저도 영혼구원을 위해 헌신하려 합니다. 제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나 내 삶의 모본이 되어주신 부모님 덕분입니다. 지금은 제 곁에 안 계시지만, 머잖아 재림의 그날 다시 만날 아버지께 칭찬받는 아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활의 아침, 웃으면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