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9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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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요한일서 3:9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가르치는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요한일서 3:9은 한 번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퍽 두렵게 보이는 성경 구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수없이 실수하고 거듭거듭 같은 죄에 걸려 넘어지는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자기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요한이 한 말에 뭔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리든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해하지 못하든지, 적어도 이 구절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결론들은 모두 부적절하다.


죄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요한일서 3:9을 더 분명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는 사도가 이 편지에서 제시하는 죄 및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한 더 폭넓은 관점을 갖는 것이다. 신약에서 죄와 관련된 가장 흔한 헬라어 단어는 명사 하마르티아와 동사 하마르타노이다. 이 용어들은 표준을 이루지 못함, 표적을 빗나감, 잘못을 저지름, 법을 어김 등을 의미한다.[1] 동사 하마르타노는 “죄를 짓다, 잘못을 저지르다”라는 뜻이다. 신약에서 이 단어의 용례 중 약 25퍼센트가 요한일서에 나온다. 분명히 죄라는 주제는 이 편지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도는 죄에 대해 무어라 가르치는가? 요한일서 3:4에 의하면, 죄는 곧 “불법”(<제임스왕역>에는 “범법”으로 되어 있음)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에 반역하면서도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1:10). 죄는 마귀와 연관돼 있으며 하나님과는 적대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3:5, 8, 9),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죄를 지은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한 경험도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도는 거듭거듭 그 해결책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에 있다고 말한다(1:9; 2:1, 2; 3:5; 4:10; 5:16). 이 희생이 죄인을 죄의 영역에서 용서 및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상태로 옮겨준다(1:7, 9; 2:2; 4:10). 이런 새로운 상태 곧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생의 삶과 구분된다(이와 관련하여 사도가 요한일서에서 사용하는 다른 익숙한 표현들을 보려면 2:15∼17; 3:1, 13; 4:4∼6; 5:4, 5, 19 등을 참조하라).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관계:

요한은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거나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두 번 말한다(요일 3:6, 9). 두 경우 모두에서 그는 동사 하마르타노의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서신의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땐 그 동사의 부정과거 시제를 사용한다(2:1).2 헬라어에서 동사의 시제는 행동의 시점뿐 아니라 종류도 나타낸다. 현재 시제는 계속 진행되는 선적인 행동 양식(비디오의 장면 같은)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반면 부정과거 곧 단순 과거 시제는 하나의 점적인 사건(스냅사진 같은)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끔 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부정과거) 계속적으로 죄된 생활 방식(현재 시제)을 따라갈 순 없다.
요한이 이런 헬라어 시제를 사용하고 죄에 대한 광범위한 신학을 보여줌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죄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남을 경험하면(요일 1:7, 9; 2:1, 2; 4:10) 과거의 죄를 용서받게 되고, 하나님께로 난 그들은 이제 그분을 위해 살고 죄에서 멀어지게 된다(2:3∼6, 15∼17, 29; 3:1∼3, 7∼10, 21, 22; 4:4∼14, 17∼21; 5:11, 12). 요한일서 1:7∼10과 2:1, 2 같은 구절은 그리스도인은 계속 죄와 투쟁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사실, 사도는 그들의 삶에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거짓말하는 자요 자기를 속이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1:6∼10).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죄를 이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2:1, 2). 그리스도인은 계속 죄를 짓는 삶(계속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을 살 순 없다. 그런 삶의 양식은 세상에 속한 사람의 방식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죄의 일시적 행동(스냅사진 같은 행동)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실족하여 넘어질 순 있으나 예수께로 가서 용서 받고 정결함을 입을 수 있다.

“주께서는 그대들을 향한 그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대들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을 인정하실 것이다. 그대들이 실패할 때, 그대들이 속아서 죄에 빠졌을 때, 기도할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주께서는 팔을 펴시고 탕자를 환영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에게로 가라. 그리고 그분에게 그대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하여 말하라. 새로운 노력을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분께 기도하라. 주께서는 결코 그대들을 낙담시키거나 그대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97).


죄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

요한일서는 죄의 문제에 대한 진리를 가르친다. 사도는 우리의 삶에 더 이상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위험을 인식하라고 경고한다(1:7∼10). 그런 주장은 용서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하는 자기기만이며, 그런 필요를 의식하지 않는 곳엔 제공된 속죄가 적용되지 않는다(2:2).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를 손에 들고 그것의 능력을 깨닫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것은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죄에 대한 유일한 참된 해결책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에 근거하여 우리를 은혜롭게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이런 거듭남의 경험은 우리도 예수께서 행하신 그 길에서 행하게 한다(요일 2:5, 6). 또한 우리가 실족한다 해도 그분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정결케 하시고 하늘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인도하신다(1:9; 2:2; 3:2, 3).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3:1, 2). 용서와 은혜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보증인가!

Tom Shepherd


<미주>

[1] P. Fiedler, “hamartia” in 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s., H. Balzand G. Schneider, 3 vols. (Grand Rapids, MI: Eerdmans, 1990), 1:65∼69을 참조하라.
[2] 헬라어의 부정과거 시제는 과거 시제이지만 주어진 행동의 정도를 더 정확하게 결정하려면 문맥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이 시제는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단순 과거 시제로 번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