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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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예수께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막 7:18, 19).

이 본문은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분을 폐지하셨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레위기 11장의 법은 구약의 의식법(儀式法)의 일부이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겐 더 이상 구속력이 없고 주장된다.

번역상의 문제: 막 7:1-23은 결례 문제를 포괄한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무시하고, 부정해진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1-5절). 예수께서는 위의 두 가지 고소에 대해 차례로 대답하시면서(6-13절; 14-23절), 먼저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런 다음 군중들에게,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19절에서 문제는 번역상의 문제로 귀결된다. 소위 문자적인 번역을 하려 해도, 이 절의 마지막 부분은 사실상 패러프레이즈 번역밖에 할 수 없다. 헬라어 본문은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선언]하셨느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마가가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에 대해 주석을 첨가했을 것이라는 어떤 표시도 없다.1 마지막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 「신제임스왕역」이 헬라어 본문에 더 충실하다. “그러므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이 번역을 받아드린다 해도 본문의 의미는 결국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달려 있다. (1) “깨끗하게 하다”(“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선언]하셨다”)는 무슨 의미인가? (2) “식물”은 무슨 의미인가?

“깨끗하게 하다”의 의미: 마가가 “깨끗하게 하다”는 말을 언급한 다른 한 군데는 문둥병자의 의식적(儀式的) 정결과 관련돼 있다(1:40-42). 마가복음의 앞부분에 나온 음식에 관한 논쟁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금지법이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바리새인들의 유전이 구속력이 있는지와 관련된다(2:13-28). 여기서도 논쟁의 관건은 성경적 법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연관돼 있다.2 살펴본 대로, 마가복음 7장의 시작 부분에 있는 논쟁의 주제는 부정한 음식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된 손에 관한 것이다.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유전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주장하신다. 이 점은 3-13절에서 거듭 강조된다. 예수께서는 그 점을 더 강조하기 위해 6-7절에서 이사야 29:13을 인용하신다. 이렇게 함으로 15절에서 하신 정결에 관한 그분의 선언을 위한 길이 마련된다.

사도행전 10-11장에서도 의식적인 부정에 대한 근본적인 염려 때문에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를 방문하기를 주저하였다. 하나님의 추가적인 계시를 통해서만, 오직 믿음으로 온전히 정결케 되어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해졌다. 할례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의식적 요구조건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 대한 마가의 기록(마 15에도 나타남)은 사람을 더럽힐 수 없는 “밖에 있는 것”(막 7:15)과 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안에 있는 것”(21, 23절)을 대조시킨다. 그러므로 겉만 씻는 것은 겉만 깨끗하게 할 뿐이고, 이런 씻음으로 처리될 수 있는 부정은 단지 피상적이다. 그래서 2절은 부정한 손을 “씻지 않은 손”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손이 실제로 부정하다는 말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불결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3, 4절이 이런 손 씻음을 기타 유대인들의 의식과 같이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20-23절은 사람의 안에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생각과 의도를 강조한다(참조 마 23:25, 26; 히 4:12).

부정의 범위: 부정의 근원(내적 부정 대[對] 외적 부정)뿐 아니라 부정의 범위도 중요하다. 의식적인 씻음은 단지 “부정한 손”과 관련되지만(막 7:2, 5), 더 심각한 종류의 부정은 전인(全人)에 영향을 준다.(15, 18, 20, 23절). 부정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스 및 연관된 동사 코이노오는 특별하다.3 이 단어들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에서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의 부정한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 않는다. 코이노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공적인” 또는 “평범한” 것을 가리킨다.4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의식적인 부정을 적절하게 방지하는 일 더 부주의한 일반 백성과의 접촉으로 유발된 부정의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 이 말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4절에서 어떤 유대인들이 시장에서 돌아와 먼저 씻지(침례를 의미하는 단어가 파생된 헬라어 밥티제인)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이 의식적으로 정결하다고 선언함으로써 바리새인들의 그런 구분을 거절하였다.

“식물”의 의미: “모든 식물”이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음식으로 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전면적인 허락이 자동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은 식인(食人)도 눈감아 준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것은 구약에서 금한 부정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 7:14-19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하나님의 법이 폐지된 것처럼 말했는데, 왜 6-13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그토록 강조했는가? 사실, 고대 문헌을 연구해 보면 유대인들은 먹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여긴 것을 “음식”으로 말하진 않았음이 드러난다.6 그러므로 19절에 언급된 “식물”이 부정한 요소를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음식이 단순히 신뢰할 수 없는 출처(주로 이방인)에서 나왔다고 하여 그것을 부정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7 이 문단이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문단에 묘사된 것 곧 이방인 중에서 하신 예수님의 사업(7:24-8:10)을 기술하는 길을 적절하게 예비한다고 보면 이런 해석이 더 넓은 문맥에 맞는다. 그것은 또한 왜 제자들이 주로 이방인들에게 유익이 될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지(8:4), 왜 예수께서 마음이 둔하여 깨닫지 못한 것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고(8:17-21), 구체적으로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대해 경고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요약: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는 “깨끗한” 음식도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되어 먹기에 합당치 않을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했다. 그분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성경적 구분을 폐지하지도 않으셨다. 예수께서 분명하게 폐지했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면, 그런데도 그분의 그런 말씀이 약 200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에 영향을 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8
예수님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겉으로만 종교적 형식을 따름으로써 내적인 결과 및 거기서 기인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이 약화되기 시작할 때마다 누룩처럼 퍼지는 바리새주의의 영향이 작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험은 위태롭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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