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회복] 팬데믹 이후 준비해야 할 세 가지

44

이훈재 목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재림교회가 원래 가진 예배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훈재 목사(예배학 전공 / 시조사 단행본 편집장)

■ ‘온라인 대피소’에 계속 머물 것인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기독교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예배를 지속해 나갔다. 온라인 예배가 아니었다면 교회 문은 이미 닫혀 버렸을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낸 게 사실이다. 물론 ‘온라인 예배도 예배인가?’라는 논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토론이 불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온라인 예배는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를 지나 팬데믹이 종식된 다음에도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 남아 예배드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8월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2021년 한국 교회 변화 추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팬데믹이 종식되어도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교인의 수가 20∼30%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온라인 예배가 오프라인 예배를 대체하고 있어 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2년 동안이나 지속된 온라인 예배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편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대규모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재림교회는 장시간 온라인 예배를 하도록 권장해왔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듯 정신없이 ‘온라인 대피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를 지나 팬데믹을 종식할 희망이 보이는데 대피소에 들어간 교인들은 오프라인 현장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그 수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 이후의 예배 회복을 위해, 대피소에서 본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할 대비를 할 때가 되었다.

■ 예배 회복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세 가지
1. 재림교회 고유의 예배 순서와 형식을 정비하라

그동안 재림교회의 예배는 설교에 치중된 형식이었다. 심지어 안식일예배를 ‘설교예배’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말씀의 위치는 종교개혁의 후손인 개신교 예배의 중심이다. 하지만 설교가 예배의 전부는 아니다. 말씀 외에도 예배의 다른 요소들이 역할과 메시지를 갖고 있다.

또한 그 고유의 순서에는 거룩한 상징과 더불어 유기적 관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예배 시작 부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한다. 다음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용서와 위로의 말씀이 선포된다. 이러한 순서는 예배의 각 구성 요소의 유기적 관계와 그 메시지가 살아 있도록 돕는다.

예배 순서에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재림교 신앙의 전통이 담겨있다. 즉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요소와 그 배열이 구원의 드라마를 그려내기 때문에 가볍게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예배의 형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설교만 중시하는 예배를 드려 왔다. 게다가 팬데믹이라는 비상 상황을 만나 설교의 앞뒤에 배열된 여러 다른 순서를 목회자가 재량껏 축약하거나 생략해 버렸다.

물론 예배의 요소나 형식은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가능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응급상황이 일시적이 아니라, 향후의 새로운 예배문화로 굳어질 것이란 우려다. 실제로 여러 교회가 온라인 방송을 운영하면서 예배 순서와 형식을 파괴하거나 변형했고, 그것이 그 교회의 예배 형태가 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예배 순서와 형식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재림교회 특유의 예배문화다. 과도한 변형은 온전하고 풍부한 예배 재현을 방해할 위험이 크다.

북미의 저명한 예배학자 루스 덕 박사는 각 교단이 가진 역사와 전통에 따라 세워진 예배 순서를 잘 활용하여 각 시대에 맞는 복음의 메시지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 순서는 세계 재림교회에 권장하는 표준에 따른 것이다. 그 속에는 재림교회만의 독특한 기별과 정신이 담겨있다.

시대와 문화에 맞게 형식이 발전할 수 있으나, 과도한 변형은 지양해야 한다. 과도한 형식 파괴는 재림교회 역사와 신학 그리고 전통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메시지 기별까지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재림교회 고유의 예배 순서와 형식을 재정비할 때이다.

2. 회중의 능동적 참여가 일어나는 예배를 만들라
예배학을 영어로 하면 ‘리터지’(liturgy)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 ‘레이투르기아’에서 왔는데 “사람들이 함께 행하는 노동”이라는 뜻이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하는 거룩한 노동이다. 기독교 예배의 의의는 함께 모이고 참여하는 공동예배에 있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감염 때문에 모일 수 없어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모였다. 개신교의 예배 중심이 설교이다 보니 무난하게 설교만 송출하면 예배가 완성되었다고 간주하곤 한다. 목회자나 회중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족한다면, 팬데믹 이후에 다시 원래의 오프라인 예배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온라인 예배와 오프라인 예배의 차이를 못 느낀다고 말하는 교인들이 많다. 그 원인은 기존의 예배가 회중의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중은 그저 보고 듣고 응답하는 수동적인 예배자의 모습이었다. 모니터를 보나 현장에서 단상을 보나 앉아 지켜보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집이 더 편하게 앉아 예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집 밖으로 나오기는 더 어렵게 됐다. 오히려 목회자 중심의 오프라인 예배가 팬데믹 시대에 더 위기를 자초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역설적이게도 종교개혁 500주년의 역사를 지닌 개신교의 예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평신도 중심의 예배 개혁을 이룬 가톨릭과 달리 반대의 길을 가는 듯하다. 개신교 예배는 더욱더 전문 목회자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가는 모양새다. 사회, 기도 그리고 찬양대 정도에서만 평신도의 참여가 있을 뿐 평신도는 마치 ‘관람’ 같은 예배를 드린다. 목사의 설교 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예배 순서를 생략하거나 변형하는 일은 회중 참여를 막는 악수(惡手)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예배에서도 대부분의 회중은 불편함이 없다.

재림교회 예배 순서는 회중의 참여를 고려한 의도적 기획의 결과물이다. 모인 회중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예배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예배를 개선하고 새롭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능동적 참여를 고려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교회가 있다면, 집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예배하던 소극적 참여자들은 능동적 참여자가 권장되는 현장 예배로 나올 것이다.

언제나 예배를 기획할 때 평신도의 완전하고 의식적인 능동적 참여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의식적이라 함은 평신도 스스로가 능동적 참여의 주체임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신도 관점에서 예배 순서를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계속해서 연구해야 한다.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만이 다가올 재림교 예배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3. 몸을 통한 전인적 예배를 드려라
온라인으로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기관이나 기업은 ZOOM과 같은 매체를 활용해 왔다. 흔히 이것을 웹바디 혹은 웹몸이라 부른다. 웹에 접속되어 있는 존재는 부인할 수 없는 어떤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각 개인은 웹몸으로 만나 서로 소통하고 즐기며 위로하고 사랑을 나눈다. 또한 신앙공동체도 팬데믹을 기점으로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아무리 수많은 만남이 이어진다 해도, 우리는 육체를 기반으로 한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기 위해 현실에서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만 웹에서의 활동도 이어갈 수 있다. 현실의 몸이 없이 웹상의 몸은 존재할 수 없는 몸이다. 웹몸은 전원과 클릭에 의존하는 가변적 공간 속의 몸이기 때문이다.

정신(mind)이나 영혼(spirit)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육체성(body)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원리도 이와 같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지만, 그러한 영적인 활동 역시 육체를 벗어나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라인 웹몸으로 참여하는 것과 리얼 공간에서 육체로 참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가상공간과 달리 부피와 면적의 제한을 받는 공간이지만, 우리는 이 공간이 보다 진정한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가상공간을 가지려면 반드시 육체성을 가진 성도의 몸과 그 연합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가상공간의 예배와 교제는 허상이 되고 만다.

기독교가 과도하게 영적 세계만 강조하면 이 세상의 물질과 공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간과하기 쉽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이지만 육체의 참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만남의 시작이다. 현대의 기술사회는 가상공간은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통해 더 깊은 예배 경험을 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육체성이 간과된 예배라면 완벽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정교회 예배신학자 알렉산더 슈메만은 기독교의 진짜 비극은 세상이나 진보적 “유물론”과 “타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기독교가 몸을 배제하고 “영성화”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월이 지나도 변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진리, 그것은 바로 몸, 육체성이다. 재림교인들이 몸을 통한 전인적 예배를 드리도록 준비해야 한다.  

■ 지금은 본 집으로 돌아갈 때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경험해야 했다.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찾아오리라 각오하고 있다. 인공지능, 드론, 무인자동차,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초연결 사회로 가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헌금을 하고 각자 아바타로 가상공간 속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메타버스 교회도 곧 등장할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진보된 온라인 교회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팬데믹 이후의 현장 예배도 재정비해야 한다. 새로운 매체가 급격히 다가와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서두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배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재림교회 현대진리 메시지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육체, 몸으로 갖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늘 성소에서의 중보 역시 달라지지 않는 진리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 주자인 재림교인의 삶의 중심을 관통한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팬데믹이 서서히 종식되고 있다. 대피소에서 나와 본집으로 돌아갈 때다. 그러기 위해 원래 우리가 가진 예배 순서를 재정비해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 중심에서 회중 참여 중심의 예배를 개발하고 적용하자. 그리고 우리의 전인적 몸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성도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