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회복과 안식일 정신] 그의 백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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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성 목사는 위드 코로나 시대, “예배의 회복을 위해 지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류재성(영남합회 부산서부교회 담임)

류재성 목사는 <재림마을 뉴스센터>가 [기획특집]으로 마련한 ‘이제 위드 코로나 선교를 준비한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1844년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 이후 발생한 재림교회가 구속사적 측면에서 갖는 두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짚었다.

그는 “첫째는 예수께서 기초되어 설립하신 교회의 교리적, 신앙적, 복음적 초대 교회로의 회복이고,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최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시대 ‘남은 교회’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류 목사는 “전자가 가능했기에 후자가 완성될 수 있었고, 우리에게 보내신 선지자가 있었기에 그 모든 사실(의의)이 온전할 수 있었다”면서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요, 그(God)의 것이요. 그의 계획(Plan) 속에 있는 것이요, 그의 구속사적 역사의 완성을 위하여 세워진 마지막 시대 최후의 보루”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이 사실에 대해 여전히 우리의 장자권이 흔들림 없는지 보여준 일정 부분 분명한 충성의 시금석 역할을 하게 됐다”면서 ‘그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 예배와 특별한 의미의 안식일이 있다. 그의 교회인 것은 분명한데, 우리에게 ‘그의 백성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확인했나?
– 우리를 두렵게 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제 익숙해지니 한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아마 백신 접종과 코로나로 인한 직접적 사망자의 현저한 저하와 감염병을 대처하는 노하우가 쌓인 결과에 대한 안심일 것이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국의 방역 조치의 완화가 지금은 더 절대적일 것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이번 팬데믹 못잖은 기록된 또는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살아남았고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참으로 두려워 할 것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마태10:28)) 해야 한다.

그러므로 팬데믹적 질병이나 그 위세를 이용하는 어떠한 세력도 두려워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이번에 경험한 펜데믹은 향후에 전개될 수많은 유사한 사건의 예방주사가 아니라 ‘우리는 결단코 이길 수 없다’고 했던 고대 이스라엘의 아낙자손이나 골리앗이 될 것이다.

심리적, 신앙적 낙심과 패배주의는 이 시대의 시대사명을 가진 우리의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을 빼려는 사단의 술책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물매를 집어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소년 다윗이 되어야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재림교회와 성도들에게 예배와 안식일 성수에 있어 어떤 의미와 과제를 남겼나?
– 이는 우리에게 매우 당연하고 중요한 주제인데, 약간은 민감한 주제가 되었다. 정직히 말하면 이 주제는 팬데믹과 상관없다. 팬데믹은 팬데믹 이전에 확인할 길이 불분명했던 우리의 영적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하늘길에 고마운 일이다. 적어도 개인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신앙상태를 돌아보고 뜨뜻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과거 성경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되짚어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 신념(信念), 즉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세 천사의 기별을 증거 해야 하는 마지막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요청이 기록되어 있다.(계12:17 ; 14:4,5,12)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시대가 반복될 때 세속으로부터 밀려오는 부담감과 두려운 압박감을 이겨낼 신념이 있는 것인가! 순교자들은 그것을 이겨낸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자가 말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는(No Cross,  No Crown)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남은 백성인 우리에게 예배와 안식일 성수와 관련해 드릴 말씀은 계시록 2장10절에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기별에 기록된 주의 말씀이다.
  
“….환란을 받으리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물론 방역지침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의 예배와 안식일 정신의 회복을 위해 우리는 이제부터 무얼 준비해야 할까?
– 솔직히 “방역지침에 따라…”라는 말이 마음에 약간은 거슬린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위드 코로나’ 시대라 하여 예배와 안식일 정신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변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생각해야 하는 우리 신앙 유지의 양태(樣態)가 있다.

1) 우리는 공동체 예배중심의 신앙생활을 한다.
2) 안식일 신앙에 관한 우리의 신념은 분명한가!
3)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재림신앙인가?
4) 마지막 시대에 걸 맞는 신앙생활이 유지되고 있는가!(말씀, 기도, 증언의 말씀, 선교) 등이다.

이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으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개인신앙 회복이다. 즉, 우리의 교회와 공동체는 예배와 안식일 신앙 회복을 위해 개인신앙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적 사회이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고 독주보다는 합주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구조다. 교회도 그렇다. 그러나 신앙과 신념으로 무장한 개인을 만들어 내지 않고는 우리의 공동체는 내.외부적 위협에 쉽사리 와해되고 말 것이다. 예배와 안식일 문제는 더욱 그럴 것이다.

▲ 그렇다면, 그 일을 위해 지금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이 일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영역과 공동체가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먼저 개인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재림신앙을 최우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음은 남은 무리로서의 정체성 회복이다. 성경과 증언의 말씀 그리고 기도의 삶 회복을 통해 자신을 깎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 신앙이 회복되고 선교 근력이 생길 것이다.

교회(교단)와 공동체의 영역에서는 개인의 변화를 이끌어 낼 절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는 신념이 불명확한 리더십, 존재가 불분명한 리더십, 적당히 타 교단의 수고의 흐름에 얹혀가려 하는듯한 불확실성의 리더십으로는 교회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

동시에 더 높은 개인신앙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교회는 다양한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 특정 기관의 존립을 위해 교단의 재정과 시간을 투자할게 아니라 교단 전반적인 건강한 성장과 교회의 내일을 준비하는 차원의 미래 투자적 관점에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의 연합회가 900~1000명에 육박하는 채용된 목회자를 보유하고 있는 메머드급 한국 재림교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처럼 특정 학위만 거의 모든 구성원이 갖고 있지만 않다면(특히Graduate school).

지금 교회는 신학을 기본 베이스로 한 경영학도, 상담심리학도, 법학도, 사회학도 그리고 예언적 흐름을 민감히 감지할 수 있는 국제정치학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영적 수요 시장이 펼쳐져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미래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끝으로 현 한국 재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평신도 사역(Layman Ministry) 분야인데, 오늘은 이 부분을 약하기로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다.

▲ 팬데믹 사태는 우리의 신앙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특히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했다. 온라인 예배는 편리성은 있었으나, 신앙적 해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하면, 펜데믹 시대에 또는 펜데믹 이후의 시대에 변화된 예배 환경에 대한 대책으로서 온라인으로 변화해야 한다든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야 한다든지 또는 아예 차제에 온라인예배(교회)로의 전환까지 염두해 둔 다양한 논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논의 자체를 폄훼할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도 온라인과 관련해 많은 재정을 투자하여 장비와 인력을 개선하고 보강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참으로, 진정으로, 정말로 온라인으로의 변환되는 예배의 형태가 우리의 신앙과 신념 그리고 마지막 백성으로서의 영적 삶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령 실내 대면 예배가 불가능할 경우 바로 온라인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실외에서 예배를 드리게 해야 한다. 집이 아니라 특정 넓은 장소에서 모이든지 자동차로 모이더라도 우리의 결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또는 실내라도 이번처럼 방역 단계에 따라 인원 제한을 받는다면 교회를 포함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소그룹 별로 준비하고, 시간대를 달리해 집회를 열어야 한다. 사역자가 직접 모든 소그룹을 순회하며 설교하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의지와 신념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유가 뭐든, 모일 수 없으니 그냥 모이지 않고 방송으로 대체하는 대책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은 이렇게 하고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 그 틈새를 위하여 예비해 놓을 우리의 차선책이 돼야 한다,

▲ “바이러스 때문에 공공의 안전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장 예배의 중단이다. 이는 앞으로 감염병 예방이나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종교생활을 포함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국가적 혹은 사회적 시도가 늘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그렇다면, 추후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 시책에 대한 협조와 신앙의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 종교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 부분이다. 경제학적, 심지어 국내외 정치학적 관점을 포함하고 있음으로 아주 주도면밀한 분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이번 경우를 감염의학적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유연성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감염으로 시작됐지만 위에 언급한 모든 게 혼재돼 쓰나미처럼 우리를 위협했다. 고통스러웠다. 텅 빈 교회를 보고 눈물을 닦았었다. 지켜야 한다는 의지의 탓이었을까… 며칠을 앓아누웠다 정신을 차렸다.

지난해 봄 코로나가 인류의 목을 급속도로 조여올 때, 우리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정의 상태를 보이며 수많은 제도를 쏟아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020년 3월20일자 기사에서 국제정치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전염병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고 있는 극단 처방들이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으면서 전체주의적 권력의 공고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는데, 공동체의 일원으로 용인했다.  

또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스테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개별국가 단위의 권력을 강화하고 민족주의의 재발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모든 유형의 정부들이 코로나 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비상조치를 채택할 것이며 이들은 위기가 종식된 후에도 새로이 얻은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 글에서 “코로나 위기를 맞아 인류는 특별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진단했다.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국수주의적 고립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 권한 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정부의 감시체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보통 때는 몇 년의 숙고가 필요한 미성숙하고 위험한 기술들이 위기상황에는 손쉽게 합법성을 부여 받는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학습 된 수월한 통치 방법론을 국가 권력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난 2년간처럼 우리의 신앙을 제한하는 일과 신념을 시험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기록된 성경 예언을 통하여 충분히 제공 받아왔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굳게 서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원수는 우리가 지래 겁먹고 알아서 판단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오늘을 위하여 두라 평지에 꼿꼿이 서 있었다.

이러한 때에,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적당한 타협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은 이웃에 대한 희생적 결단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건강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국가에 선행적으로 협력하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이웃의 안전을 앞장서서 도모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배의 제한을 받아들이고 우리 신념의 스크레치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매우 선한 사마리아인적 사고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웃이 아니라 먼저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도치(倒置)시키면 안된다. 하와에게 찾아왔던 사단의 술책같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신념이 분명할 때, 하나님은 이 시대에 우리가 이웃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방법론을 알려 주실 것이다. 죽음과 법령이 두려웠으면서 이웃 사랑을 앞에 내세우면 안 된다. 비겁한 일이다.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지나며 우리는 어떤 성찰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대처 △교단적 대처의 적절성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적 측면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 재림교회는 어떤 점이 취약했고, 어떤 면에서 강점을 가졌다고 보나?
– 이 주제는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반드시 재림교회판 Covid-19 백서라도 기록하여 후일에 있게 될 다양한 상황을 위한 자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저 대면 예배를 중단하고 교회에 발걸음을 끊는 것 이외에 개인적, 교회적으로 어떤 특별한 대처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었다. 끝까지 문을 닫지 않는 교회는 교회 안팎의 부드럽지 않은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번과 같은 세기적, 세계적, 국가적, 교회적 위기의 때는 백성들은 일단 교단을 바라본다. 교단은 지난 위기의 시기에 조금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종교자유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대 국가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시에 대 교회적 계도를 할 수도 있었다고 판단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재림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적 측면은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작은 부분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봉사적 측면은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종교적 예배의 제한에 대한 대처라든지 우리의 신념과 배치되는 국가 행정을 상대하는 대목에서는 다른 교단에 비해 뚜렷한 우위성을 판단하기는 쉽지가 않다. 국가 행정에 대한 빠른 협조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할 도리에 대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혼재되어 판단이 모호하다고만 하겠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대 정부 강경 투쟁을 감행한 여타 교단의 수혜를 우리가 동시에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도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강점이다.

▲ 현장 예배가 줄어들고, 어느덧 일상화된 온라인 예배활동을 개인신앙과 어떻게 연계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 동일한 상황이라면 온라인보다는 대면 현장 예배에 좀 더 적극성을 보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좀 더 영적으로 오래 살길이다. 그런데 기왕에 익숙해진 온라인은 우리의 신앙을 조금 더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온라인을 통해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많은 기별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넘쳐나는 온라인 기별의 무분별한 ‘취식’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온 신앙과 믿음을 빠르게 변질시킬 위험도 있음을 잊지 말자.

▲ 코로나에 대한 저항이 아닌, 이제 수용하고 일상에 동반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의 예배와 안식일 정신 회복을 위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당부나 강조의 말씀이 있다면?
– 성도 여러분! 인류사에 기록될 만한 팬데믹 상황에서 얼마나 신앙생활과 경제생활에 고생이 많으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실 이가 오실 것입니다. 지금은 그분께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낼 때입니다. 굳게 섭시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는 동안은 결단코 침륜(沈淪)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속 권력의 검푸른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힘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로 영원히 세워진 계명 지키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죽음으로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 만난 이 사태와 경험이 거울이 되어 훗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환란을 넘어 가는데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리라 확신합니다. 멀지 않는 미구에 모두 하늘 유리바닷가에 서서 우리를 환란에서 구원해 주신 우리 구주 예수를 목놓아 찬양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