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히”라는 말은 영원한 형벌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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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영영히”라는 말은 영원한 형벌을 의미하는가?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사 34:10).

특히 “여호와의 보수할 날”(8절)을 말하는 바로 앞의 문맥과 더불어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영원토록 불타는 곳 곧 악인과 불신실한 자들에게 영원한 심판을 내리는 지옥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범세계적 심판: 이사야 34장은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산헤립의 파괴 행동을 세상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범세계적 심판의 예증으로 사용한다(1-4절). 선지자는 악인들의 처절한 운명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큰 날 곧 악인들이 멸망하여, 여호와의 파멸시키는 천사가 다녀간 후 산헤립 군대의 시체들처럼 그들의 시체가 사방에 흩어질 날을 바라본다(37:36). 그는 앗수르 군대의 파멸에서 하나님과 싸우는 악의 군대의 마지막 운명과 관련된 약속을 본다.(1)
5절부터 에돔이 열국의 대표로 나타나는데, 그 이름은 온 세상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품은 증오심은 에돔 백성(에서의 후손)이 이스라엘에게 품은 미움을 통해 예시된다(민 20:18, 20; 삼상 14:47; 왕상 11:14). 9절과 10절은 에돔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 후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묘사한다. 에돔의 시내는 웅덩이로 변할 것이며 그 땅(“티끌”)은 유황으로 바뀔 것이다(9절). 다시 말해서, 무서운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영히”라는 말의 의미: 논의 중에 있는 10절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돕는 열쇠는 대개 “영원한”, “영영히”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 올람이다. 이 용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가장 먼 시간” 또는 “먼 시간”으로, 항상 끝이 없는 영원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시간을 나타내는 다른 히브리어 단어와 마찬가지로 올람은 어떤 사건의 발생과 밀접히 연관돼 있고, 따라서 그 사건의 지속 기간과 관련지어 사건을 묘사한다. 대부분 올람은 “제한된 기간의 미래 곧 제한된 기간 내내(종종 한 평생) 지속되는 상황”을 가리킨다.(2) 다시 말해서, 올람의 의미는 그것의 주어에 의존한다. 주어가 불멸하시는 하나님(딤전 6:1)이거나 그분이 영원히 존속하도록 창조하신 것들이라면(예컨대, 땅은 “영영히” 세움을 받음; 시 78:69; 104:5), 올람은 끝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주어가 불멸성이 없는 인간이나 영원히 존속하도록 창조되지 않은 것이라면, 올람은 제한된 기간을 가리킨다. 예컨대, 백성들은 모세를 “영영히” 믿어야 했고(출 19:9), 출애굽기 21:6에서 종은 그의 상전을 “영영히” 섬겨야 했으며, 사무엘은 성막에 “영영
鐸있어야 했다(삼상 1:22). “영영히”는 각 경우에 “관련된 사람이 살아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요나의 경우, “영영히”는 단지 3일 동안 지속되었다(욘 2:6; 개역한글판은 “오래도록”으로 번역함).
성경에 의하면, 구속받은 자들은 재림의 날에 불멸을 입게 될 것이다(고전 15:50-54). 그러므로 마태복음 25:46에서 “영생[영원한 삶]”은 끝이 없는 삶을 가리키고, 반면 악인의 “영벌[영원한 벌]” 또는 “영영한 불”(41절)은 악인이 불멸함을 입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한정적인 성격을 갖는다. 소돔을 멸했던 불(유 7)처럼 마지막 심판에서 악인과 사단을 소멸할 “영영한 불”은 제한된 기간만 지속될 것이지만 그 효력은 영원할 것이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불은 성경적 개념이 아님: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문맥에 나오는 이사야 34:10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 후의 에돔 땅을 묘사한다.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이 본문은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불 개념을 논하거나 그것을 지지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개념은 처음으로 하데스를 죽은 자들의 거소로 생각했던 헬라인들에게서 유래했고, 어떤 이들은 생전에 형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세의 하데스에서 응당한 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개념이 후에 덧붙여졌다. 이런 철학은 후에 어떤 교부들뿐만 아니라 연옥 등과 같은 추가적인 사항을 덧붙인 중세 교회에 의해서 채택되었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악인들이 계속하여 고통을 받는 한 장소가 지하세계[저승]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끊임없이 불타는 지옥은 성경적 개념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언어학적인 증거에 덧붙여, 이사야 34:10을 올바로 해석하는 둘째 열쇠는 하나님의 품성이다. 에스겔 18:23에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과연 죄인들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타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워 하실까? 과연 자비의 하나님께서 악인이 진저리나도록 무서운 고통의 형벌을 영원토록 받는 한 장소를 우주의 어딘가에 둘 수 있을까? 성경에는 그러한 영원한 지옥이 지금 존재하거나 미래에 만들어질 계획이 있다는 언급이 없다. 성경에서 히브리어 셔올과 헬라어 하데스는 죽은 자의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지, 죽은 악인이 고통 받는 장소가 아니다. 죽은 자는 의식이 없고 불멸하는 영혼 같은 실체가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고려해 보면(전 9:5; 시 146:4), 영원히 불타는 지옥 개념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것이 확실하다.

Winfried Vo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