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는 악도 창조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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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여호와께서는 악도 창조하시는가?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제임스왕역」에는 이 본문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여호와니라.” 이 본문의 단언이 너무 두드러져서, 초기 기독교 시대의 이단인 마르시온(Marcion)은 이 본문을 이용하여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름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 본문 외에 다른 본문들(참조 암 3:6; 렘 18:11; 애 3:38)도 하나님을, 악을 만드신 분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하고 의로운 하나님, 공의롭고 정직하신 하나님(신 32:4), 죄악을 기뻐하지 않고 악이 없으신 하나님(시 32:4), 인간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렘 29:11),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고 빛이신 하나님(요일 1:5),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약 1:13)이 어떻게 악의 창시자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하나님의 주권: 이 진술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본문은 세상 및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주권을 확언한 것이 분명해 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으로 페르시아 왕 고레스마저도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여 구원과 심판을 행하신다(사 45:1, 2). 그러므로 여기서 “빛”과 “어두움”은 낮과 밤의 순환이 아니라 “구원”과 “심판”을 나타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속이 이르러 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먼저 심판을 베푸시고,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에게 하신 것처럼 심판을 통해 열국들에 재앙을 허락하신다.

“악”의 의미: “악”(「개역한글판」에는 “환난”으로 되어 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라)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구절(창 2:9, 17)에 나타난 것처럼 이 말은 “악”을 의미한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재앙”(렘 26:3), “해”(삼하 15:14), “죄악”(창 6:5) 등으로 번역되었다. 문맥에 비추어 볼 때, 논의 중인 구절은 심판과 구원과 세상의 통치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최고 주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구절(위의 유사한 구절들)에서 말하는 악(“환난”)은 반드시 도덕적 악만이 아니라 징벌하는 악 즉 자연 재해 등을 가리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나 악을 창조하시진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요일 4:8, 16).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하나님은 악의 창시자가 아님: 하나님은 악의 창시자가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온전한 본성과 품성에 완전히 위배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천연계의 사물들(나쁜 것도)을 이용하실 수 있으며, 유일하신 참하나님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고레스 왕 같은 사람을 사용하여 구원을 위한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실 수 있다. 성경적 개념에 비춰볼 때, 하나님이 악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모든 재난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안에서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사고에서 하나님 자신이 허용한 것 또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을,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그분이 적극적으로 행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성경의 기자들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을 그분이 행하신 것으로 말하곤 한다. 하나님은 악한 일들을 허용하시지만 결코 악을 만들거나 조장하진 않으신다.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그것을 오용할 가능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를 창조하신 데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지만 그분이 악의 창시자는 아니다. 죄와 악에 대한 책임은 자유로운 선택의 힘을 가진 도덕적 피조물에게 있다.

Frank M. Ha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