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가 참으로 가나안 온 땅을 정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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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여호수아가 참으로 가나안 온 땅을 정복했는가?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 11:23).

여호수아 11:23은 여호수아의 명령 아래 연합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그가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주었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말한다(수 21:43-45과 비교하라;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러나 사사기 1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각 지파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각기 다른 곳에서 가나안 거민들과 싸워야 했으며(예를 들어, 삿 1:1-3, 9-17), 비(非)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하는 고립지역이 그 땅에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을 보라.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삿 1:27; 참조 29-33).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정복 사업이 필했다고 말하는 여호수아 11장 및 21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 땅에 남아 있었던 이유: 여호수아 11장, 21장에 따르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의 연합 군대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 영구적으로 거주하려는 것에 대한 군사적인 항거를 물리쳤다. 이 성경 장들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과 같이 그 땅의 거민들을 완전히 몰아내거나 멸절시켰다고 말하진 않는다(민 33:50-53; 신 7:1, 2, 16; 20:16, 17). 이러한 군사 행동은 적을 전반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한 대공습이었지, 각 지역들을 정복하여 즉시로 이스라엘이 점거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수 11:22은 아낙 사람들이 거한 고립 지역이 가사에 남아 있었는데, 유다 지파가 후에 그것을 취하였다(삿 1:18).

“여호수아서는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입성한 것, 요단강가 길갈에 그들의 기지를 둔 것, 남방 및 북방 가나안의 지방 통치자들과 백성들에 대한 (군사적 점령 없는) 초기 공습 등을 기록하며, 이어서 세겜과 디르사에 이르는 길갈 북쪽과 헤브론/드빌 남쪽 등에 대한 지엽적인 점령을 말하고 있다. 여기엔, 어떤 성급한 학자들이 아무런 사실적인 증명 없이 여호수아의 본문에 끼워 넣는 것과 같은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정복은 없다.” (K.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2003], 163).

사실,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이유 때문에 가나안의 열국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조금씩 몰아내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심으로써 거주민이 없는 땅에 (위험한) 들짐승들이 신속하게 번성치 못하게 하려 하셨다(신 7:2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과업을 끝내고 해산된 후 오랜 기간에 걸쳐 그 땅의 거민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분명 각 지파에게 달려 있었다. 이와 관련된 일이 곧 사사기 1장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을 충분히 끝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하여 가나안 족속들의 항거에 부딪혔고, 그들이 그 땅에 남겨 둔 이방인들에게 종교적 악영향을 받았다(민 33:55, 56; 삿 2:2, 3, 20-23).

두 가지 국면의 정복: 여호수아와 사사들은 그 땅을 정복하는 과정의 두 가지 국면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 국면 곧 가나안 사람들의 요새를 군사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 두 번째 국면 곧 가나안 거민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각 지파의 군대들에 의해 단지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과도하게 어려운 일을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일을 결정적으로 끝마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대적의 힘은 점점 강성해져서 이스라엘은 또다시 무서운 도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삿 1장). 그리하여 부분적으론 정복이 이뤄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따라서 실제로 여호수아와 사사기에는 모순이 없다. 여호수아와 그의 연합군이 가나안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각 지파가 그 땅의 거민들을 파멸시키지도 몰아내지도 않고 그들이 거기 거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이 비(非)이스라엘인들이 다시 대항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부록> 블레셋인들(Philistines)

““블레셋”이라는 이름은 몇몇 언어에서 인식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이들은 플리스팀(Pelistim)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영어의 “Philistines”으로 번역된다. 애굽어 자료들에는 이들이 “해양 백성들”로 수록돼 있다. 이들은 해양 백성들에 의한 애굽 침입에 참여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나일강의 삼각주 지역에서 벌어진 육해전에서 바로인 람세스 3세(Pharaoh Rameses III; BC 1183-1152년경)에게 패배하였다. 이 전투의 상세한 장면들은 룩소르 반대편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의 북쪽 외벽에서 볼 수 있다.
블레셋의 기원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성경의 진술에 의하면, 블레셋은 일반적으로 그레데(Crete)로 여겨지는 갑돌(신 2:2ㅈ3; 렘 47:4; 암 9:7)에서 나왔다. 그렛 사람들(Cherethites)은 그레데인들과 동일한 사람들로 여겨져 왔다. 그렛 사람들은 다윗이 블레셋인들 가운데 거할 때 그의 본거지였던 시글락(참조 삼상 30:14)에서 멀지 않은 네겝에 살고 있던 블레셋 족속의 일족이었을 것이다.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Pelethites)이 갓 사람 600인과 함께 다윗의 호위대 가운데 있었다(참조 삼하 15:19; 20:7, 23; 대상 18:17).
아벡에서 있었던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가 사무엘상 4:1에 기록돼 있다. 블레셋이 그 전투에서 이겨 언약괘를 빼앗았으나(삼상 4:17)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염병을 보내시므로 7개월 후에 언약괘를 돌려보냈다(삼상 5:1-6:21). 그 후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블레셋이 미스바에서 다시 공습했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때 사무엘이 기념석을 세우고 그곳을 에벤에셀(“도움의 돌”, 7:12)이라고 이름 지었다. 블레셋인들이 사무엘의 생전에는 이스라엘을 다시 침입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긴 성읍들을 회복하였다(삼상 7:14). (참조 W. E. Elwell and B. J. Beitzel, Baker Encyclopedia of the Bible 2 vols.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8], 2:1680-1682).


Lloyd Wil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