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화잇은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했는가?

893

엘렌 화잇과 그녀의 저술들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그 답변들
101 Questions about Ellen White and her Writings

[본 연제는 최근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공식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오른
네티즌들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것임]


질문 7: 엘렌 화잇은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했는가?

네티즌의 질문: 저는 엘렌 화잇이 그녀의 어떤 저술들을 출판할 때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했다는 주장에 신경을 써 왔습니다. 누가 이런 비난을 했는지, 표절을 진짜 했다면 언제 했는지, 어떤 책에서 그리고 그런 책들의 어떤 부분에 표절한 것이 포함돼 있는지, 표절과 관련된 기타 사항은 없는지 등등을 말해주십시오.

답변: 1980년경에 월터 레아(Walter Rea)라는 재림교회 목사가 엘렌 화잇을 심각하게 비판하기 시작하여, 그녀가 자신의 기별을 주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저자들의 책에서 가져왔으며, 따라서 그녀의 저술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표절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레아는 퍽 호언장담하면서 그런 비판을 설명하는 책도 썼습니다. <에드벤티스트 리뷰(Adventist Review)>나 <목회(Ministry)> 같은 재림교회의 정기 간행물에 1980년대에 상당 기간 이 문제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상하다시피,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는 이 문제들을 대처하기 위한 문서를 준비했습니다.
엘렌 화잇이 그녀의 글들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언급 없이 사용했습니까? 사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비평가들이나 우리 직원들 또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저작물들에 있는 구절들과 확실히 유사한 부분을 찾아내 표시한 엘렌 화잇의 책들을 분류해 놓았습니다. 월터 레아는 그녀의 저작의 90퍼센트가 표절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과장된 진술이며 심지어 허위 진술입니다. 그의 이런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총회는 당시 퍼시픽 유니언 대학(Pacific Union College) 종교학부의 과장이었던 프레드 벨트먼(Fred Veltman) 박사에게 부탁하여,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이 당시 먼저 출판된 다른 책들에 어느 정도의 문학적 의존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연구에 착수하도록 했습니다. 벨트만 박사는 연구의 편의를 위해 그 책에서 열다섯 장을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와 그의 조력자들이 그 일을 하는 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벨트먼 박사는 아주 관계가 먼 것으로부터 축자적인 사용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문학적 의존을 일곱 가지 등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저는 그가 축자적으로 사용된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가 발견한 것은 어떤 구절을 패러프레이즈 한 것이나 대충 일치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확실하지 않을수록 논란의 여지는 더 많지만, 철저한 연구를 위해서 그것들도 이 조사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분석한 자료의 30퍼센트 정도만이 엘렌 화잇이 찾아보았을 다른 사람의 글들과 다소간 닮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문학적 일치가 높은 부분에선, 저는 엘렌 화잇이 다른 저작물을 사용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에선, 문서의 차용을 증명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잠시 보류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엘렌 화잇은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슬쩍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려 한 협잡꾼입니까?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Review and Herald)>와 <사인즈 오브 타임즈(Signs of Times)>에서, 그녀는 코니베어(conybeare)와 하우슨(Howson)이 쓴 <성 바울의 생애와 서신(The Life and Epistles of St. Paul)>이라는 책을 추천했는데, 그것은 이듬해에 출판하려 했던 그녀 자신의 책 <바울의 생애 개요(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를 쓰는 데 의존한 책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부정직한 일을 숨기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각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의 서론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책을 어떤 때는 언급 없이 사용했다고 터놓고 알렸습니다. 또한 그녀는 그렇게 한 이유도 밝혔습니다. 다음을 읽어보십시오.

과거에 종교 개혁의 발전에 따라 생긴 큰 사건들은 오늘날 개신교계에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역사적 사실들이며, 따라서 그것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그러한 역사를 본서에 해당되는 범위 안에서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곧 사실의 기술을 이해하기에 적당하리만큼, 또한 필요한 만큼만 간결하게 취급하였다. 어떤 역사가가 주제의 총괄적 견해를 간단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건들을 분류했거나 편의상 세부 사항들을 요약했을 경우에는 그의 말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인용한 목적이 그 저자를 권위자로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가 주장하는 바가 주제를 설명하는 일을 쉽고 설득력 있게 해주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한 우리 시대에 종교 개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견해를 기술할 때도 그들이 출판한 저서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각시대의 대쟁투, 서론 11-12쪽).

엘렌 화잇의 관심은 적절한 의미를 찾는 데 있었습니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다른 사람들이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되면, 다른 저자를 권위자로 인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그들의 표현들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거리낌 없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합법적입니까? 몇몇 재림교회 학자들이 19세기의 성경주석가들의 글을 면밀하게 읽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엘렌 화잇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일반화한 관행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주석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책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용하고도 거의 매번 출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프레드 벨트먼이 <시대의 소망>을 연구하여 발견한 것을 <목회> 지에서 보고한 것을 보라).
엘렌 화잇의 시대 이전에, 존 웨슬리도 같은 관행을 따랐습니다. 그가 저술을 하고 설교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은 아이디어의 출처를 적어두려는 결심을 했다고 하는 진술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후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요지에서 이탈하도록 만들고, 모든 사항마다 출처를 매번 제대로 밝히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결국 출처를 밝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엘렌 화잇은 감리교의 전통 아래서 성장하였습니다. 아마도 웨슬리의 이런 견해를 그녀가 일찍부터 채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엘렌 화잇의 관행은 그 당시의 표준들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녀 또한 그러한 관행을 따른 것을 시인했고 그 이유도 <각시대의 대쟁투>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이것이 표절입니까? 대총회의 법률관계 부서에서 판권 문제 전문가인 변호사 한 사람을 고용하여, 엘렌 화잇의 저술들 및 표절과 관련된 비판들을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그 변호사가 300시간을 사용하여 이 일을 마친 후에, 그는 표절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래믹(Ramik) 변호사는 기꺼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법정에서 엘렌 화잇을 변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가 분명하게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There Simply is No Case,” Adventist Review, September 17, 1981, 6을 보라. 이 기사는 빈센트 래믹 변호사와 <에드벤티스트 리뷰> 편집진과의 대담이다. 그는 특허, 상표, 판권 문제 전문가들로 이뤄진, 워싱턴 D.C. 소재의 Diller, Ramik, & Wight 사(社)의 사장이었다.  이 기사와 이 문제와 관련된 다른 세 개 기사는 “엘렌 화잇은 표절했는가”라는 팜플릿으로 리프린트되었다. 이것은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