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 신탁] 김원정 장로 부부의 ‘거룩한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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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장로와 권영선 집사 부부는 농지연금의 일부를 몽골선교를 위해 정기후원하기로 서약했다.
몽골에 신학교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큰일이다 싶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이 밀려왔다. 마침 노후를 위해 농지연금을 신청했는데, 매월 5만 원씩이라도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충청합회 안면장곡교회(담임목사 김동우)에 출석하는 김원정 장로와 권영선 집사 부부 이야기다. 이들은 몽골 신학교와 대쟁투총서 보내기운동에 동참하며 농지연금의 일부를 정기후원하기로 약정했다.

김 장로는 한때 자녀 교육을 위해 삼육대 근처의 담터 마을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직장이 안산이어서 매일 출퇴근길에 예언의신을 읽었다. 3년 사이 예언의신 다독상을 3번이나 받았다. 제일 많이 읽었던 해는 무려 36권을 읽기도 했다. 그는 예언의신이야말로 재림교회의 보물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귀한 책을 몽골에 보낸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예수님은 어린 소년의 보리떡 5개로 5000 명을 먹이셨잖아요. 5만 원은 적은 돈이지만 절반은 신학교 설립을 위해, 절반은 대쟁투총서 보급을 위해 드립니다. 몽골사람 5000 명에게 생명의 양식이 전해지는 기적의 5만 원이 되면 좋겠어요”

그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요일 휴업령이 내리면 우리가 가진 재산은 아무 쓸모 없게 된다는데, 아직 기회 있을 때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골 땅은 값도 별로 없는데다 팔려고 내놔도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다.

걱정만 하고 있던 중, 우연히 농지연금제도를 알게 됐다. 당장 신청했다.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게 되니 매월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참에 매월 세계선교 헌금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마치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는 행복’ ‘나누는 기쁨’을 알게 하기 위해 이 제도는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부부는 매월 ‘보내는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뿐 아니라, ‘홍보대사’에도 자원했다. 나이는 팔십이라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카카오톡은 할 수 있으니 세계 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선교의 드라마, 전국에서 들려오는 헌신의 사연을 전하려 한다. 안면도뿐 아니라 땅끝까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역이 아닐까. 그래서 부부는 세계선교야말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사명이라고 믿는다. 죽는 날까지 이 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다.


세계선교 신탁 – 김원정 장로 부부의 ‘거룩한 부담’

김원정 장로는 어린 시절 무척 개구쟁이였다. 얼마나 장난이 심했던지 교회의 흙벽을 무너뜨리기도 했고, 예배당 안에서 천방지축처럼 뛰어다니는 말썽꾸러기였다.

“혹시 ‘밀가루 교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한국전쟁 후 정말 가난했던 시절,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도왔죠. 저도 밀가루를 나눠줄 때 재림교회에 처음 나갔어요. 1959년 장곡리에 윤정원 씨가 재림교회를 세웠고, 1960년 8월 30일 침례를 받았습니다. 신종근 목사님이 중한대회장이었을 때였는데, 안면도 반포해수욕장에서 야영회를 한다고 해서 친구와 놀러 갔다가 침례가 뭔지도 모른 채 받았는데,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안면장곡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며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신앙은 별로 없었다는 그는 군복무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겪는다. 수송부 소속으로 운전병 보직을 맡았는데, 어느날 그만 사고를 낸 것. 재판에서 ‘업무상과실치상’ 선고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가벼운 집행유예로 나왔을 텐데, 하필 그때가 군풍기집중 단속 기간이어서 1년 형을 언도받았다. 항소 끝에 남한산성에 있는 육군형무소에서 7개월을 보냈다. 재판 결과 6개월로 감형됐고, 즉시 부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은 그 먼 거리를 마다하고 징역을 사는 아들을 여러 차례 방문하셨다. 부모님께 불효자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7개월을 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게 당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섭리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말씀을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제대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바로 재림교회.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했고, 믿지 않던 부모님을 인도했다. 감옥에 갇혔던 요셉이 훗날 총리가 되어 가족들을 먹여 살린 것처럼 부모님을 영생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감옥에서 만난 하나님 덕분이었다. 전화위복의 기적을 경험한 후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됐다. 김 장로의 자녀들은 현재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이제 자신도 ‘보내는 선교사’가 되었으니 가족 전체가 선교사 가족이 된 셈이다.

아내 권영선 집사는 당진이 고향이다. 서산으로 이사 와 야영회 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는데, 아들 김광성 목사는 새천안교회를 섬기다가 PMM 19기로 대만에 파송돼 복음을 전하고 있다. 손녀딸 하연이는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PCM 4기 선교사로 지원했다. 막내딸 미현 씨는 1000명선교사에 출신으로 SDA남영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류재경 목사를 만나 결혼했다. 현재는 PMM 개척선교운동 16기로 파송돼 헌신하고 있다. 막내를 머나먼 곳에 보내며 안쓰럽기 짝이 없었지만, 파송예배에서 사위 류 목사가 낭독한 헌신사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의 모든 것 시간, 재능, 재물, 능력,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닌 바로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빌려 쓰고 있음을 기억하여 겸손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모든 것을 주님께 빌려 쓰고 있다는 말에 먹먹한 감동이 밀려왔다. 김 장로 부부는 딸과 사위를 선교사로 보낸 후 자신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던 중,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 몽골을 위해 ‘보내는 선교사’로 자청했다.  

흔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하지만 김 장로 부부는 자녀들이 사역하는 곳뿐 아니라 생면부지의 몽골을 위해서도 도움의 손길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세계선교는 안으로 굽는 팔이 세상을 품는 팔로 변하게 한다. 주님의 심정으로, 주님의 손이 되어 헌신한 이들의 손을 타고 몽골에 신학교 설립과 대쟁투총서 보급운동이 또 하나의 날개를 달았다.


세계선교 신탁 – 김원정 장로 부부의 ‘거룩한 부담’

세계선교를 후원하는 방법은 직접 계좌 송금을 통한 후원과 정기후원 방법이 있다. 후원을 희망하는 성도들은 아래 내용을 기록해 세계선교 신탁사업본부장 김종근 목사(☎ 010-2736-3605) 문자로 보내면 된다.

1. 이름:
2. 핸드폰 번호:
3. 매월 정기 후원할 금액: 원
4. 은행명:
5. 계좌번호:
6. 출금 일자:  일(10일, 15일, 25일 중 택일)
7. 주민등록번호 앞 6자리:

■ 세계선교 신탁사업 첫 번째 프로젝트
1. 에티오피아 실업선교학교 설립 2억 원 지원 및 『정로의 계단』 1만 권 보내기
2. 네팔 교회 개척 5,000만 원 지원 및 『시대의 소망』 1만 권 보내기
3. 인도 우타라칸주 교회 개척 3,000만 원 지원 및 『시대의 소망』 1만 권 보내기
4. 말라위 교회 개척 3,000만 원 지원 및 『정로의 계단』 1만 권 보내기
5. 중동 A 국가 선교 센터 건립 2억 원과 『정로의 계단』과 『대쟁투 총서』 1만 질 보내기
6. 몽골 신학교 설립과 교회 개척 2억 원과 『대쟁투 총서』 1만 질 보내기

■ 세계선교 신탁사업 참여 방법
ARS 후원: ☎ 1877-1740
정기후원(CMS): http://www.ihappynanum.com/Nanum/B/TDMXRUKKXC
직접 계좌 송금: 우리은행 1005-302-195946(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웹사이트: www.adventistmission.kr

■ 문의 및 신청
세계선교 신탁사업본부장 김종근 목사(☎ 02-3299-5341, 5305 / 010-2736-3605)

‘주’는 나의 행복입니다(The Lord is My Happiness)
‘주는’ 나의 행복입니다(Giving is My Happ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