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땅에도 죽음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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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새 땅에도 죽음이 존재하는가?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에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사 65:20).

이 구절의 문제는 그것의 문맥인 이사야 65:17-25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련된다. 이 문맥은 새 땅에서의 삶이 어떠할지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묘사 가운데 하나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17절). 거기에는 더 이상 곡하는 것이나 우는 일이 없을 것이다(19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집을 짓고 거기 거주하며, 포도원을 가꾸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다(21절). 그런 후 영광스러운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25절).
그러나 이 구절이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낙원에 죽음이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새 땅에서 “나무의 수한처럼” 장수할 것이나(22절) 영원히 살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다른 성경 본문들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한 것(단 7:18; 욜 3:20; 미 4:5; 살전 4:17; 계 22:5)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이사야 65장 예언이 주어진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와 귀환: 이사야에서 말라기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및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으로의 귀환이다. “포로와 귀환”은 선지자들이 포로 전에 썼든 포로 중에 썼든 포로 후에 썼든 그들의 글에서 지배적인 주제이다. 이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옴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변혁이 동반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예를 들어, 에스겔 36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본토로 돌이켜 회복시키고 열국들에게 증거하게 하심으로써 인간 사회를 변혁하고자 계획하셨다(겔 36:24, 28, 33-36; 참조 미 4:1-5; 사 2:2-5; 11:2-5). 그분은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주심으로써 인간 본성을 변혁하고자 하셨다(겔 36:25-27; 참조 렘 31:31-34; 욜 2:28, 29; 사 35, 5, 6). 그리고 결국 그분은 천연계 자체를 변혁하여, 기근과 자연재해를 몰아내고자 하였다(겔 36:30, 35; 참조 사 11:6-9; 35:1, 2, 7; 겔 47:1-12).
세상의 끝이 지구의 전면적 및 물리적 파괴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홍수 기사 및 요한계시록과는 달리, 일반 예언서의 선지자들이 본 끝은 역사적 및 지엽적 끝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회, 인간의 본성 및 천연계를 변혁하기 위해 역사에 힘 있게 개입하신다. 대체로 이런 끝은 바벨론 포로와 귀환의 문맥 안에서 묘사된다.
그러나 후대의 독자들이 이런 과거의 예언들을 일반화시켜 거기 들어있는 모든 사항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빠짐없이 성취될 것을 기대할 위험이 여기에 있다. 이러는 대신, 신약에서는 이사야 65장 예언의 묘사가 훨씬 더 큰 원형에 대한 표상임을 참작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 이사야 56-66장 전반에 나타난 일차적인 관심은 바벨론 포로 후에 있을 유다의 회복에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 65:20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시작될 것이라고 약속된 세 가지 본질적인 변혁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이 삼중 변혁은 당시 선지자들의 시대, 장소, 상황 안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얼핏, 이사야 65:17의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땅을 파괴한 후에 그것을 재창조하신다고 말하는 요한계시록 21:1과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이사야 65장에 개략된 평화로운 상태는 영원한 불멸의 상태보다는 이 땅에서의 삶과 더 조화된다. 죽음은 이 새로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20절).
이사야 65:20의 전반적인 문맥은 온 세상이 새롭게 됨보다는 바벨론 포로 후에 팔레스타인의 유다가 회복될 것을 가리킨다. 이사야 65:17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관해 말하지만, 다음 절은 이 창조를 “예루살렘”과 “그 백성”에 국한한다. 다시 새 하늘과 새 땅(22절)을 언급하는 이사야 66장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고 다른 이스라엘의 형제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이키는 것을 묘사한다(19, 20절). 그러므로 이 일은 일차적으로 구약 역사의 배경 안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데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이사야에 반복하여 언급되는데(37:16; 40:22; 42:5; 44:24; 45:18 등), 매 경우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에서 구원해 내는 문맥에서 나온다. 더욱이, 이사야 51:16에서는 바벨론에서부터 포로들을 구원해 내는 사건(11절)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놓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우선 이사야 65:17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문자적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여기의 상징적 언어를 이용하여, 21장과 22장에 묘사된 대로 재창조를 통한 땅의 전면적인 쇄신에 대해 기술한다.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해 이 예언들의 성취가 원래 의도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목적은 온전한 성취를 향해 움직여 나갈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705, 706).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이 시작되는 방법은 다소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이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 이뤄지는 대신에 그리스도 교회를 통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4:332).

요약: 이사야 65:20은 신약의 배경에 비추어 읽으면 “문제 구절”이 되지만, 유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일어날 역사적 사건의 배경에 비추어 읽으면 납득이 간다. 선지자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개입할 것이지만 완전한 낙원은 한 번에 조금만 이뤄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초림에 이어서 요한계시록은 종말 때에 훨씬 갑작스럽게 이뤄질 변혁의 광경을 묘사한다.

Jon K. Paul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