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함을 얻을 수 없는 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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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사함을 얻을 수 없는 죄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 32).

이 구절의 난제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해진 죄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 또는 성령을 말로 거역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왜 그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가? 다른 모든 죄와 훼방이 사함을 받을 수 있는데, 왜 그 한 가지 죄만은 용서받을 수 없는가? 왜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 거역하는 것보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 더 치명적인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갈등: 예수께서 무엇에 관해, 누구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 말씀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본문의 문맥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태복음 12장(참조 막 3:28, 29)에 나온 이 본문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마태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긴 것 곧 안식일에 이삭을 따서 먹는 것에 대해 예수께 도전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마 12:2).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편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신다. 또다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예수를 비난하고, 그 사건이 끝나가는 무렵에 그들이 나가서 예수를 어떻게 죽일지 의논한다(10, 14절). 그런 후 예수께서는 물러나 자기를 따르는 무리 중에 있는 모든 병든 자를 고쳐주시면서, 당신의 치유행위를 알림으로써 불필요하게 유대 지도자들의 분노를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15-16절). 그러나 귀신 들려 눈멀고 귀먹은 사람을 예수께 데려와 치유함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놀라서, 마음에 두지 않고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터놓고 말했다(22, 23절). 그들이 던진 이 수사학적 질문은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라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이 소문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비꼬았다(24절). 그들은 그 기적을 부인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것을 귀신의 능력으로 돌리려 했다(참조 막 3:30). 예수께서는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설수 없는 것에 빗대어 그 말은 맞지 않다고 응수했다(25, 26절).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귀신을 쫒아낸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돌렸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중에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그것을 부인했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30절)라고 밝히 말씀하셨다.

성령의 역사: 예수와 바리새인들 간에 갈등하는 것이 그분이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신 배경이다. 헬라어로는 이 말씀이 디아 투토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 때문에”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에 철저하게 반항하는 것의 위험에 대해 그분이 그들에게 이토록 분명하고 강하게 표현할 필요를 느낀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대담하고 고집스런 반대 때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을 힘입은 것으로 여김으로써 예수님의 봉사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있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요 16:8). 성령의 역사에 고집스럽게 저항하면, 구원과 관련된 이 중요한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찔림이 없게 된다. 성령은 예수를 믿지 않을 때 죄를 책망한다(요 16:9). 바리새인들은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주어졌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며, 그분의 감화력을 소멸하고 심지어는 그분을 제거할 온갖 기회를 찾아다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삶에 미치는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을 강퍅케 하여 그분의 책망하시는 음성을 듣지 않았고, 그렇게 하여 점점 그 음성에 무감각하게 되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그분께서 점진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책망에 반응하면서 동시에 말로 성령을 거역하기는 어렵다.


“아무도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것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회개하라는 초청에 반응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죄이다.” (The Faith I Live By, 58).

이와 유사한 경험이 디모데전서 4:2에서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 곧 성령의 촉구하심에 무감각하게 된 자들로 묘사된다. 히브리서 6:4-6에, 성령의 은사를 받고 비추임을 받은 후에 진리에서 돌이키는 것에 대해 매우 무서운 경고가 주어져 있다. 마태복음 19:26에서 예수님이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하다고 가르쳤을지라도 그러한 사람들은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지는데, 그것은 그들이 온전한 지식이 있는데도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욕을 보이는 지경에까지 고집스럽게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가 의미하는 바다.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의 성격: 마태복음 12:31, 32에 언급된 죄는 부주의나 무지나 단순한 불신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집요하고 대담하게 거절하는 것이며, 그것을 악한 것으로까지 말하고 마음에 미치는 성령의 역사에 저항하는 것을 가리킨다. 말로 예수를 거역하는 것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죄이지만(마 12:32),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사역을 하시는 분을 집요하게 거역하는 것에 대하여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는 고백하지 않고 용서 받기를  거절하는 죄이다. 어떤 사람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염려한다면 그 염려 자체가 성령께서 그 마음에 가책을 주시고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인데, 이미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것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3:7-9에 나오는 호소가 여기에 적절하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Edwin Reynol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