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Blue) 노선에서 그린(Green) 노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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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지상에서 화려한 도시 양식의 마천루를 바라보는 것이 홍콩 생활의 기쁨이었다면 이제는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보다 훨씬 더 높은 산 정상에서 자연의 녹음과 그것들이 조화를 이뤄 낸 홍콩 특유의 풍광을 휴대 전화에 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목사님, 이번에 친구하고 홍콩 여행 가려고요.” “오, 그래! 그럼 우리 집에서 머물면서 여행 다니면 되겠네. 언제든 환영이다!” “목사님, 말씀은 감사한데요. 홍콩은 1박 3일 여정이면 충분한 걸요. 그래서 친구와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 머물면서 실컷 둘러보다 가면 되니 시간 내서 얼굴이나 뵈어요.” 홍콩에 살다 보니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교회 청년들이 여행 온다고 자주 연락이 온다. 그런데 매번 그들이 하는 말은 이랬다. “홍콩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 한 번올라갔다 내려와서 딤섬이랑 남기 국수 먹어 보고 야경 보면서 사진 몇 장 찍고 마지막으로 야시장 가서 쇼핑하고 새벽 비행기 타고 돌아오면 여행 끝이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틀린 얘기는 결코 아니다.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나조차도 가족들과 주말에 시간을 보낼 때면 매번 이 루트의 반복이었고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고작해야 외식의 메뉴였다.

여행의 묘미라 하면 여행지의 언어가 서툴러 불편함은 있겠으나 손짓, 발짓하며 그 지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의 생생한 표정을 접해 보고 비록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수다 떠는 소리에 그만 정신이 팔려 하차해야 할 곳을 지나치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이 아니겠는가! 홍콩의 대중교통이라하면 영국의 영향을 받은 더블 데커 버스(2층 버스), 마을과 마을을 왕래하는 미니버스, 도심 한복판을 다니는 트램, 구룡 반도와 홍콩 섬 사이를 연결해 주는 페리 그리고 지하철인 엠티알(MTR)이 있다. 각각의 타 보는 재미가 다르고 접하는 창 밖의 홍콩 경관들이 무엇보다도 색다르기 때문에 이동하려는 장소를 잘 고려하여 골고루 이용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으나 짧은 일정의 여행으로 가성비를 우선시한다면 MTR 이용을 제일로 추천하고 싶다.

홍콩의 MTR 노선은 서울 메트로와는 달리 그리 많지가 않을 뿐 아니라 환승해야 할 경우 대부분의 역을 번거롭게 오르락내리락할 필요가 없고, 바로 마주하는 곳에서 갈아탈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 온 여행객이나 현지 거주자들에게조차도 매우 용이하고 피곤을 덜어 준다는 큰 장점이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부분 가성비 차원에서 짧고 굵게 찍고 가는 여행을 하기 때문에 MTR 이용 시에 크게 두 노선, 즉 홍콩 섬을 통과하는 블루 노선과 구룡 반도를 다니는 그린 노선 정도만 이해하면 여행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홍콩 삼육대학에서는 퍼플 노선으로 시작하여 두세 개 역을 지나면 환승역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블루와 그린 둘 중에서 어떤 노선으로 환승하느냐에 따라 기행의 구성이 확연히 달라진다. 두 주요 노선 중에서 수년 동안 나는 노스포인트를 시작으로 해서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애드미럴티 그리고 센트럴 역과 홍콩 역으로 구성된 블루 노선만을 줄곧 이용하여 이곳에서의 여가를 대부분 즐겨 왔다. 이 블루 노선에는 홍콩의 랜드마크 격인 고층 빌딩 숲 사이로 유명 쇼핑몰, 식당, 호텔이 즐비하다. 영국 양식과 중국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매우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서 현지에 살면서도 이 노선의 지역을 다닐 때마다 마치 또 다른 해외에 와서 여행 중인 듯한 묘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기에 반복되는 루틴과도 같은 이 루트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홍콩에 온 첫해, 무자비하게 습한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 가고 있을 무렵 어느 오후에 지인의 초대를 받아 블루 노선의 지역에서 체험한 것이 있다.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고 고풍스런 공간에서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현지인들도 즐겨먹는 따뜻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와 스콘, 에그타르트, 각종 달콤한 디저트류를 맛보는 순간 홍콩 생활 전부가 달콤하게 느껴지면서 이런 홍콩스러운 기행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특별한 기념일이거나 여가를 즐기러 가족들과 외출하게 되면 우리의 발걸음은 항상 블루 노선의 맛 기행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렇게 습관처럼 블루 노선을 따라 여가를 즐기는 이곳 생활이 한 해 한 해 더해질 때마다 내 모습은 점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볼살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았고 뱃살은 곧 폭발하려는 화산처럼 부풀어 올라 셔츠 단추가 터지기 직전의 소위 왕서방처럼 묘사되어지는 모습으로 같은 장소, 다른 시간에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외출이 불가해지자 남아도는 시간적 여유에 사진첩을 둘러보다 발견한 것이다. 정부의 엄격한 정책으로 대부분의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되자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바다 출입마저 제한되니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산이 전부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가냐고 했을 정도로 등산엔 무관심했다. 다만 간간이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썰렁한 농으로 웃겨 본답시고 던진 질문이었다. ‘등산은 싫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두 개의 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답은 부동산과 맛동산이요.’ 등산은 곧 죽어도 싫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었다. 그런 나를 한국의 알프스 소녀였던 아내조차도 쉽게 바꾸지 못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블루에서 그린으로의 나의 기행 노선 변경이 시작되었다.

변경된 노선은 그린 노선의 색깔이 말해 주듯이 블루 노선과는 다르게 카오룽 피크, 니들 힐, 버팔로 힐, 라이언 락 등의 유명 산과 하이킹 트레일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지역으로써 홍콩 생활을 하는 8년 동안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다. 여정의 노선이 바뀌자 옷차림부터 바뀌었다. 굳이 머리에 힘을 주며 신경 쓸 필요 없이 모자만 눌러쓰면 그만이었다. 블루 노선에서는 우아한 잔에 우려진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우아한 공간에서 즐기고 있었다면 변경된 노선에서는 투박한 보온 물병에 담긴 티(Tea)를 후덥지근한 산자락에서 마시고 있다. 이전에는 지상에서 화려한 도시 양식의 마천루를 바라보는 것이 홍콩 생활의 기쁨이었다면 이제는 고층 빌딩의 스카이 라인보다 훨씬 더 높은 산 정상에서 자연의 녹음과 그것들이 조화를 이뤄 낸 홍콩 특유의 풍광을 휴대 전화에 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이런 노선 변경의 기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변화는 최근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내 체형 변화였다. 놀라지 마시라! 10kg 정도의 체중 감량이 되어 건강해졌을 뿐 아니라 소비 지출도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내외는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오래간만에 블루 노선으로의 기행을 나섰다. 당연히 예전 같으면 식도락 구성의 기행이었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심의 블루 노선에서도 즐길 수 있는 홍콩 여행의 명소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로 향했다. 그러나 피크 트램 이용이 아닌 하이킹 복장으로 간간이 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서로의 손을 잡고 연애 시절까지 상기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긴 줄을 기다려 피크 트램을 타고 올라갔었는데 이 트램 라인을 끼고 걸어 올라가다 보니 순식간에 지나쳤던 홍콩 특유의 풍광을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정상에 오르니 그날의 기념일이 더더욱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도 다시 예전처럼 홍콩으로 여행을 오게 된다면 여전히 가성비를 고려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블루 노선 지역에서 보내게 될 텐데 최근 변화된 나의 삶에서 터득한 여정인 애드미럴티 역에서 출발하여 홍콩 공원을 통과하면 만나는 트레일을 따라 보여지는 마천루의 배경을 여유롭게 카메라 앵글에 멋지게 담아 나만의 인생 샷을 남기며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에 오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내려와서는 센트럴의 탐짜이 쌈고(TamJai SamGor)에 들러 토마토나 마라 국물에 다양한 토핑을 얹은 쌀국수의 풍미를 맛본다면 비로소 앉아 있는 그곳이 바로 홍콩 여행의 절정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로 여행이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할 때 독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각자의 지역에서 교과서적인 평범한 기행으로부터 벗어나 그곳만의 특색을 꾸준히 탐구하고 현지 별미와 경험들을 맛보며 즐기는 가운데 이전과는 색다른 도시를 발견해 보길 바란다!!

서세광
글로벌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기 좋아하는 홍콩 삼육대학교 교목

가정과 건강 7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