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라는 정서의 정체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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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고의로 자신에게 큰 피해가 되는 잘못을 하였고 그것에 의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행동을 상대가 하지 않았을 때 그 분노감이 증폭되어 쌓인 것이 원한(怨恨)이다. 그 원한 속에 있는 분노감은 용서가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런 차원에서 건강심리학에서는 용서를 심리 치료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느끼는 감정, 즉 정서에도 기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정서를 느끼는 것이다. 정서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결과 우리가 그 상황에 알맞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정서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고 부정적인 정서에도 순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불안은 위험 요소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불안감이 위험한 곳을 가지 않게 하고 전염병 예방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분노감에 어떤 순기능이 있는 것일까?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정의를 수호하게 하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한다. 병사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행동의 저변에 분노가 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진노’와 ‘화를 내시는 예수’가 묘사되어 있다. 이는 신께서도 분노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예수의 생애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살면서 진정 우리가 화를 내야 할 때는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쓸데없이 너무 자주 화를 내고 분노감을 쉽게 경험한다.
   사람들은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자신이 세운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이 따르지 않았을 때도 분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나 쉽게 화를 내지만, 바른 목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올바른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하였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도 않을뿐더러 현실에서는 그렇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분노의 부작용
분노감은 우리 삶에서 필요한 정서이지만 자주 경험하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 우선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대인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정서보다 부정적인 정서에 더 민감하다. 인간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위험 상황에서 주위 사람의 표정이 불안해진 것을 빠르게 감지해야 위험 요소로부터 도망치거나 그것에 대항하여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또한 상대방이 분노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가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이기에 그것을 빠르게 인지해야 자신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그에게 대항하거나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하는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이 화를 내는 사람을 피하거나 그에 대항하여 분노를 표현하거나 공격한다.
   또한 분노는 화를 내는 사람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인간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심리적 요인이 바로 분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장 자주 연출되는 것 중 하나가 중·노년의 아버지가 자녀의 잘못에 크게 화를 내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이다. 미국심리학회장을 지낸 찰스 스필버거가 개발한 분노 척도로 수많은 학자가 분노가 어떤 질병과 관계 있는지를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잦은 분노 표출이 심뇌혈관 질환의 원인이라는 것이 검증되었다. 특히 분노를 많이 표출할수록 심혈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분노 억제가 면역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발견하였다. 다시 말해 화를 너무 참으면 면역 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분노의 심리적 조절
분노의 건강상 부정적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분노를 잘 관리해야 한다. 우선 심리학자들은 분노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 타임아웃(time-out) 기법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화가 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난다든가, 그러기 쉽지 않다면 신호등 빨간불을 생각하며 생각을 멈추거나 손목에 고무밴드를 착용하고 있다가 잡아당긴 후 놓아 따끔한 느낌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게 한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생각을 바꾸어 아예 분노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 참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불의라고 생각하거나 오해로 불의라고 착각하여 분노감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선(善)이라고 정한 것을 기준으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지 말라. 개인적 기호나 정치적 성향을 기초로 판단하여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대와 욕심에 의한 분노
쉽게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았을 때 분노한다. 상대가 부당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예상하거나 기대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가 잘못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분노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심지어 자녀에게 그렇게 기대하는 것도 욕심이다. 아예 마음에 분노감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성경 마태복음 20장에는 제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예수를 찾아와 “주의 나라에서 내 아들 중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을 때 다른 제자들이 크게 분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가졌던 욕심을 크게 탓하고 싶지는 않다. 대놓고 그런 청을 하지는 않더라도 자식과 관련해서 그와 유사한 기대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부모가 지금도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속의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그런 일에 분개했다는 것이 우리를 크게 실망시킨다. 그들이 분노한 저변에 저속한 욕심이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제자들의 마음속에 분노가 생겼겠는가?

분노의 증폭과 원한 및 용서
사람들은 분노감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키기도 한다. 타인의 부당한 행동이나 잘못에 대해 화를 내어 그 버릇을 고쳐 주고자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분이 풀려 간단히 경고만 하고 끝냈는데,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다시 상대를 만날 때까지 그 잘못의 부정적인 면을 반복적으로 되뇌며 분노의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형제자매나 자녀가 재차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귀가하지 않았을 때 그를 기다리며 분노감이 증폭된 경험이 독자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이 고의로 자신에게 큰 피해가 되는 잘못을 하였고 그것에 의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행동을 상대가 하지 않았을 때 그 분노감이 증폭되어 쌓인 것이 원한(怨恨)이다. 그 원한 속에 있는 분노감은 용서가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런 차원에서 건강심리학에서는 용서를 심리 치료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분노가 우리에게 전혀 필요 없는 정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쟁이 심한 현대 사회를 살면서 분노감을 자주 느끼고 그것을 억제하거나 표출하면 건강을 잃고 삶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분노를 잘 관리해야 한다.

서경현
분노와 같이 건강과 웰빙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 한국건강심리학회장, 한국중독상담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정과 건강 10월호 제공